갑작스러운 사고로 두 다리를 사용할 수가 없는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미 일어난 사고였다. 다행히 양족 발목뼈의 골절 이외에는 다른 손상은 없다고 하였다.
어차피 뼈는 시간이 지나면 붙을 것 아닌가.
어디 뼈가 부러진 것이 나만 경험한 것이 아닌가.
저 많은 정형외과가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골절 환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순간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한 발짝만 빨리 지나겠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내가 한 발짝만 천천히 지나갔으면 정말 대형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두 다리가 모두 골절이 되었으니 아무것도 나 스스로는 할 수가 없다.
가장 힘든 것이 생리적인 현상을 나 슷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치료하려고 오신 간호사 선생님께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다치지 않은 사람이 아니냐고 대답하였다.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한쪽 다리만 골절이 되어 병원에 오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참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잠시 40년 전으로 돌아가 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젠 내가 모든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장 힘든 문제가 의, 식, 주의 주거의 안정이었다.
남아있는 것은 월세 6개월이었다. 23만 원 원급을 받아서 매월 10만 원씩 곗돈을 넣어서 10개월 후에 이 돈을 받으면 모든 돈이 다음 일 년을 살기 위한 월세로 모두 들어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의 자산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때 혼자 한 이야기가 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전셋집에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월세를 탈출하는 데는 특단의 조치를 포함한 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월급 이외의 수익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조치가 1년이나 있었다.
병사에 누워있은 지 2주가 되는 날 치료를 위하여 보호구를 벗겨내는데 깜짝 놀랐다.
양쪽 종아리의 근육이 모두 없어졌다.
한 달이 지나니 허벅지의 살이 눈에 띄게 소실이 되었다.
일어서기 위해서는 아직도 최소한 한 달 이상이 필요할 것 같은데.
6주 되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활동하지 않고 누워만 있으니 모든 근육이 급격히 손실되는 것이었다.
서서히 고민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뼈는 붙을 것이다. 그런데 뼈가 붙고 나서 활동하면 사고 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고에 대한 고민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노인들의 사망률 1위가 낙상 사고라고.
낙상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노인들이 낙상 사고를 당하면 많은 경우 되퇴골에 골절상을 당한다.
그러면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고 이 시간은 보통 몇 달이 된다.
그러면 급격하게 모든 신체의 기능이 쇠퇴하게 된다.
가장 먼저 급격한 근육의 손실이 일어나고 근육의 손실이 일어나면 활동이 부자연스럽고 회복되기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지만, 사고로 인한 흐름의 가속도를 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년 일 년은 오로지 건강만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살아가야겠다.
지금까지 60년 이상의 기간을 살아오면서 건강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기에 ...
그러나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두 달 동안 가슴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아마 이번 사고는 지난날 건강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적당히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미래를 위한 커다란 경종을 울리기 위한 사고였던 것이였다.
아주 보편적인 골절 사고이지만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사고 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회복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제 정말 날아가는 참새도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