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는 27세에 무일푼으로 돈을 빌려 교세라를 세웠다. 교세라는 '교토 세라믹'의 줄임말이다. 현재 교세라는 15조 매출에 7만 명이 넘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또한 일본 1위 통신사 NTT에 대항하여 통신사업에 처음 도전해 2위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78세에는 일본 고위 관리의 요청을 받아 파산 직전, 22조 원의 부채, 1조 2천억의 적자, 상장폐지였던 일본 항공의 회장을 맡는다. 말도 안 되게 단 1년 만에 1조 8천억 원의 흑자를 만들고 2년 후 재상장 시키게 된다.
지방대학을 나온 그는 첫 사회생활로 망해가는 중소기업 '쇼후공업'에 입사했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지 않는 연구부서에 배치되었다. 그 회사는 입사하자마자 월급이 밀렸다.
이에 이나모리 가즈오와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견디지 못하고 모두 퇴사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자신도 더 이상 못 견디고 자위대 간부에 지원하여 합격하게 된다.
고향에 서류를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이를 본 형이 1년도 견디지 못한다며 전보를 보내주지 않았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는 수많은 고심 끝에 마음을 다잡고 일에 전심전력해 보기로 한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여기에 그 인연을 3가지 소개한다.
-우장춘 박사와 이나모리 가즈오는 딱 한 번 만났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같은 연구자로서 이야기가 한껏 무르익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했다.
-우장춘 박사는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 장래에 무언가를 해 낼 남자"라고 이나모리 가즈오에 대해 말했다.
-우장춘 박사의 별세 이후 수원의 농업시험장 근처 언덕 위에 있는 우장춘 박사의 묘를 방문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박지성 맨유 이적 당시 "절름발이가 돼도 받아줄 테니까 나중에 꼭 돌아와"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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