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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Sep 25. 2023

16 슬기로운 9급 공무원.

1994년 11월 10일.  드디어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 검찰서기보로 발령을 받았다. 이제부터 검찰수사관으로 거악척결의 선봉장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상고를 나오고 은행에 근무했다는 죄(?)로 서무과 경리계에 배치되었다. '저는 원치 않게 상고를 갔고, 어쩔 수 없이 은행에 입사했었습니다. 자신 없었기에 은행을 그만두고 검찰청 시험을 본 것입니다.'라는 말은 못 했다.  선입견은 그렇게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나를 결정지었다. 검찰청에도 경리계가 있다는 것도 미처 몰랐다.  

  

배치표를 보니 서무과외에도 여러 검사실, 사건과(?), 집행과(?), 공판과(?) 등등 대학처럼 여러과가 많이 보였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검사실인데..... 다른 과는 내 전공과 무관한데. 

내가 경리에서 맡은 업무는 말 그대로의 경리업무와는 관련 없는 물품지급 그리고 영치(?) 업무였다. 물품은 그렇다고 치고 영치는 또 무엇인가? 어린애들의 유치도 아니고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치는 자동차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번호판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었고, 교도소에 돈을 넣어주는 영치금도 아닌 범죄자들로부터 압수한 물건들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시험공부를 위해 달, 달 외우기만 했던 업무를 직접 담당해 보니 실감이 났다. 


예를 들어 가해자가 피해자와 다툼 중에 주변에 있는 나무 막대기로 피해자를 때리고 도망가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고 치자. 가해자는 아마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막대기는 폭행의 증거물로 압수가 될 것이다. 수사를 종료한 경찰은 사건기록과 함께 압수한 막대기를 곱게(?) 포장하여 검찰청 사건과에 접수할 것이다. 압수 담당직원을 압수물 수리절차를 밟고 난 후 압수물을 영치 담당자인 나에게 인계를 할 것이다. 물론 압수물의 종류는 범죄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영치된 물건은 보통 사건진행과 함께 동행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다른 과의 업무들도 대충 알게 되었다. 사건과는 경찰이 수사한 사건기록, 각종 영장(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 등)을, 집행과는 법원에서 선고된 벌금형을 확정시키고 수납하며 벌금 미납자인 수배자를 검거하는 업무를 그리고 공판과는 법원 재판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을. 


'먼저 첫 번째 소식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에 나가 있는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현재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익숙한 뉴스 진행자의 멘트였다. 그렇지만 갓 임용된 수사관이 당장 수사 업무에 투입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엄격하고 지난한 도제과정을 거쳐 마침내 훌륭한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이 탄생하는 것처럼. 검찰청에는 수사 업무 외에도 수사관이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았다.  은행 생활을 몇 년 했다고는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또 달랐다. 내 위로 사다리처럼 뻗어 있는 계급. 9급 검찰서기보와 8급 검찰서기는 주임이란 이름으로, 7급 검찰주사보와 6급 검찰주사는 계장으로, 5급 사무관, 4급 서기관, 3급 부이사관 등등. 은행에 입사하자마자 계장으로 불렸지만 몇 개월 새에 주임으로 강등(?) 되었다. 


폭탄주는 큰 고역이었다.  유독 술에 약해서 폭탄주 한두 잔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마다 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술이 약한 건 아마도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늘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중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점심 무렵부터 소주, 막걸리를 드시기 시작해 밤이 되면 거나하게 취하시곤 했다. 때때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에게 벼락같이 화를 내다가 물건을 던지기라도 하면 무서워서 큰 집으로 도망치곤 했다. 그럴 때면 큰 어머니는 언제나 '너는 이다음에 커서 술 먹지 말아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했고 나도 이다음에 커서 '절대로 술을 먹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했다. 쇄뇌 된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 큰어머니가 쇄뇌를 시켰고 나도 나를 쇄뇌시켰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술을 잘 못 마신다는 것이 꼭 손해만은 아니었다. 한잔만 마셔도 얼굴부터 온몸이 붉으락 거리고 곧 쓰러질 듯하면 더 이상  강권하기도 쉽지 않은 듯하여 위기(?)를 모면한 적이 더러 있었다. 


계급이나 폭탄주를 떠나 최대한 빨리 맡은 업무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야 은행을 박차고 나온 다짐대로 대학진학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월급은 은행보다 훨씬 적었지만 시간적으로는 좀 더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내가 찾던 물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나는 잠시 궤도에서 이탈한 열차였다. 이탈했지만 궤도를 잃지 않았고, 끊임없이 다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시간들은 내 맘속 한편에 궤도 재진입을 위한 공업사 같은 것을 차려놓고 고장 난 심신을 수리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우물 속을 벗어나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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