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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Oct 06. 2023

어머니와  참기름

어머니 그리고 참기름

점심시간이 되면 메뉴 정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때가 가끔 있다. 김치찌개, 비빔밥, 순댓국, 두루치기, 보리밥한상을 기본으로 정해 놓고 가끔씩 삼계탕 집으로 가는 일상이다. 장고 끝에 악수라니 오늘은 보리밥 비빔밥으로 정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친절한 사자님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식탁 위에 반찬과 함께 보리밥이 담긴 큼지막한 대접이 놓였다. 가냘프지만 늘 애정 가득한 콩나물, 약간의 고춧가루 채색이 잘 어울리는 무채, '나만 바라봐'라는 듯 새침한 시금치. 셋 만으로는 왠지 모르게 허전한 사이 난폭하게 계란찜이 끼어든다.

시금치가 먼저일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내 맘이다. 가끔 삼겹살집에서 상추 위에 고기와 밥 중 뭘 먼저 올리는지 왈가왈부하는 게 웃긴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옆에 서서 '참기름도 있으니 맛있게 드시라'라고 주인장으로서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고 주방으로 향한다. 


참기름을 집으려다 말고 잠시 망설였다. 한 뼘이 안 되는 작은 플라스틱 용기였다.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식당에 있는 참기름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왠지 어머니가 짜 주진 참기름과는 좀 다른.... 무언가가 약간은 섞여 있을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시골에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마다 어머니는 ‘조심히 올라가고 가서 참기름 많이 처 묵어라는 말과 함께 언제 준비했는지 먼지가 잔뜩 묻은 신문지로 뚤뚤 말은 참기름 두병을 챙겨주시곤 했다. 신문지를 뚫고 나올 것처럼 참기름 향은 강렬했다. 이 세상 바닷물을 모두 응축시켜 이 병에 꽉꽉 눌러 담으면 이만한 향이 날까?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다고 확신했다. 그토록 작은 알갱이들이 어떻게 그런 향기로운 맛을 낼 수 있을까! 알갱이 하나하나가 향을 내기 위해 100년 정도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지난달 말일에 시골에 내려갔었다.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귀가 조금씩 먹기 시작하시더니 이제는 눈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익숙한 물음 외에는 친절하게 답을 주지 않으신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하나에 200만 원 하는 보청기를 30만 원이라고 속이고(?) 하나 사 드렸는데 하룻 만에 깨 밭에 나가 일하다가 잃어버렸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우셨다. 보청기 판매점에 사정을 얘기하니 딱하다며 본사에 얘기하여 하나를 무료로 주겠다고 했다. 잠 한숨 못 주무시고 어머니는 그다음 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밭에 나가 온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셨고 마침내 찾으셨다는 연락을 요양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그 이후로는 아예 잃어버릴까 무서워 끼지 않고 애지중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만 하셨다. 여러 번 설득하여 끼워보긴 했는데 이미 청력을 상실할 정도여서 보청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어머니는 또 치매 증상도 좀 있으시다. 어제저녁 퇴근하는 길에 계속 전화를 하시기 시작했다. 어차피 통화가 불가능해 전화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시는 거다. 전화를 받으면 "누구냐. 둘째냐"라고 소리친다. 내가  "예"라고 차 문이 떨어져 나갈 듯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해도 이내 '이상하네'라고 혼잣말을 하시면서 끊어버린다. 끊고 또 하고 또 하고. 급기야 내 아우성이 눈곱만큼 들렸는지 갑자기 ’ 막내가 죽었다고? 다시 목소리를 높이다가 전화를 끊었다.

당장 차를 몰고 5시간 거리인 시골로 가볼까 생각하다가 할 수없이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시는 이종 형님께 부탁하였다. 집에 가서 어머니께 막내 잘 있다고 전해달라고. 나중에 형님께 전해 들은 바로는 간밤에 중국에서 지내는 막내가 잘못된 꿈을 꾸어 걱정이 되어 그러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올해도 어김없이 삼밭에 참깨를 심으셨다. 그러고는 내가 내려가자마자 '옳다구나' 생각하고 참깨를 베어 집에 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갖다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밭에 가보니 참깨가 수북하게 잘 자랐다. 가까이서 보니 여기저기 어머니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손수 고랑을 파고 비닐을 씌운 다음 구멍을 내고 어린 참깨 모종을 심으신다. 흙이 마르면 새벽에도 물을 주고, 심하게 바람이라도 불면 행여 꺾일까, 쓰러 졌을까 한달음에 달려가 보듬어 주신다. 마치 막내아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 듯 정성이시다. 아직 중학생처럼 더 크고 싶어 하는 녀석들, 몇몇은 여름 태풍을 못 이겼는지 꾸부정한 모습이었고 또 몇몇은 아예 누워 게으르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날한시에 심고 돌봤는데도 제각각이다. 어릴 때 정들었던 낫을 들었다. 어째 낯설다. 낫은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를 먹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진짜 참기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그냥 참기름하면 됐는데 이제는 진짜 참기름’, ‘원조 참기름’, ‘진짜 원조 참기름등등 수식어가 계속 늘고 있다. 참기름뿐만이 아니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추어탕, 순댓국 등도 마찬가지다.      

30여 년 전 은행을 막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고추장 장사를 하고 있는데 단속에 걸렸으니 100원만 좀 빌려달라고 했다. 갓 입사했던 터라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마침 여러 은행 카드를 발급받아 가지고 있어서 네 군데 은행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망설이지 않고 빌려주었다. 그런데 금방 갚겠다던 친구가 그다음 날부터 연락을 뚝 끊었다.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배신감에 얼마나 마음이 상했던지. 몇 년이 지나서 오해를 풀긴 했지만……


그 후로 누가 뭔가를 부탁하면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겼다. 수사관이란 직업병을 얻은 뒤로는 더욱 그랬다.

수사기관에 근무하다 보니 수많은 사기 사건을 접하게 된다. 차용금 사기, 중고물품 사기, 무전취식 사기를 비롯하여 최근의 보이스피싱에 이르기까지. 막무가내식의 고전적인 수법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인터넷 기술을 탑재한 최첨단의 수법까지. 진심과 진짜가 사라진 곳에 기다렸다는 듯이 가짜와 속임수가 잔뜩 똬리를 틀었다.


어머니는 이제 또 비닐하우스 안에서 참깨를 말리고 털 것이다. 다 턴 참깨를 가지고 읍내로 가서 참기름을 짜서 다시 집에 가져다 놓을 것이다. 너도나도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갑론을박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상실의 속도는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손에 쥐고 하루를 보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숨소리보다 문명의 이기와 접착되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믿고 신뢰하는 사람 냄새이다. 그것이 진짜 참기름이다. 우리 사회의 진짜 원조 참기름은 찾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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