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나래 Jan 01. 2023

12월

퍼즐을 완성하는 달

나에겐 취미가 필요했다.
집에서 홀로 즐길 수 있는 취미.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에 빼앗긴 집중력을 되찾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오백 피스의 퍼즐을 샀다. 퍼즐 조각은 사람 많은 백화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같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준다. 그렇게 제 위치를 찾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자세 불편한 줄도 모르고 목이 저려온다. 목은 아프지만, 열중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퍼즐은 반복 작업이다.


규칙 없이 쌓여있는 퍼즐 조각을 파헤쳐 한 조각을 들어본다. 이 한 조각은 내게 우연히 집어진 조각이지만 언제 집었느냐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


맞춰진 퍼즐이 거의 없는 초반부에 집었다면 '이쯤 되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둔다. 완성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아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는 것은 자칫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조각이 모여 '퍼즐 섬'이 여럿 완성된 중반부에는 조각의 상하좌우를 꼼꼼히 살펴 정확한 위치에 살을 붙여줘야 한다. 초반부처럼 대충 둬서는 영원히 퍼즐을 완성할 수 없다.

빈 곳이 많이 줄어든 후반부에는 퍼즐의 자리를 찾기가 쉬워진다. 그때가 되면, 집중력은 살짝 떨어진다. 초반부의 막연함이나 중반부의 호기심은 사라진다.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나 '완성되면 이 모양이겠구나.' 하는 무심함이 느껴진다.



12월은 31개의 퍼즐 조각이 남은 달.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내가 완성할 그림은 무엇인지 윤곽이 보인다. 지금까지 맞춘 퍼즐을 모두 뒤엎어 다시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좋든 싫든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12월을 매듭달이라고도 부른다.


매듭을 짓기 싫었다. 남은 조각을 모두 맞췄을 때 완성할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퍼즐은 미완성인 상태로 남겨두어도 괜찮다. 그러니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퍼즐을 맞추고 싶다.


통신사의 '데이터 이월'처럼 '월 이년(月 移年)'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한 한 해는 남은 날을 내년으로 보내, 한 해를 일찍 마무리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365일이지만,

언제 집었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퍼즐 조각처럼

12월에는 '고생했다. 수고 많았다. 고마웠다.'는 말을 듣고 싶고

1월에는 '잘해보자.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손 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