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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Dec 15. 2022

물방울의 겨울 방학


구름이 왜 하얀 줄 알아?




하늘을 바라보던 여자친구가 물었다.


우리는 이따금 진지한 대화를 하곤 했지만,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는 퀴즈를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홍시 맛이 나니 홍시인 것처럼, 구름이 원래 하얘서 하얀 거 아닐까?" 같은 답변을 원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답이 없는 질문에 내가 아리송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걸까? 의도 파악에 많은 시간을 써버린 나는 구름은 왜 하얄까에 대해선 고민하지 못한 채, 문학적인 표현을 원하는 게 아닐까 싶어 "하얀 게 예뻐서?"라 답했다.


여자친구는 살짝 미소 짓고는 큰 표정 변화 없이 다시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물방울은 크기가 커서, 빛이 들어오면 모두 퍼져버린대. 퍼진 빛이 모두 모여서 구름이 하얗대.” 여자친구는 정말 구름이 하얀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구나. 나 혼자 뭘 그리도 고민했나 싶었다. 그러다 구름이 왜 하얀지 궁금해서 찾아봤을 여자친구를 생각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었다.


나는 구름도 물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렸을 땐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우산이 없으면 흠뻑 젖어야 하고, 실내에 있어도 옷이 축축해지는 그 느낌이 싫었다.

그러나 비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좋았다. 눈은 하늘에서 뿌리는 장난감이었다. 기왕 오는 거 잔뜩 내려서 쌓이길 바랐다. 눈이 내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이벤트가 되었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이유는 그날에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눈이 쌓이는 날에는 눈밭에 누워 굴렀다. 눈을 한 움큼 모아 눈덩이를 만들어 친구의 뒤통수에 힘껏 던지고 놀았다. 그렇게 한바탕 놀면 볼과 코가 빨개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지만 상관 없었다.


물은 눈이 되면, 장난기가 가득해진다. 공중에서 낙하산을 탄 듯 둥둥 내려오며, 숨소리를 죽인 채 조용하게 착륙한다. 새벽에 갑작스레 찾아와 창밖 풍경을 온통 하얗게 바꾸어 놓고, 본인을 녹이려는 햇빛의 감시를 피해 그늘 밑에 숨어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고 있다. 눈 치우기가 힘들어 그만 내려라 빌어도, 이에 질세라 더 많이 침공하는 장난꾸러기.



바다로, 구름으로, 비로.

쉼 없이 모습을 바꾸며 세상을 누비던 물도

즐겁게 놀 수 있는 겨울을 기다렸을 것 같다.



어릴 적 내가 눈 내리는 겨울을 기다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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