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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Jan 05. 2023

장래희망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나요?

<장래희망>

교실 뒤편

학급 게시판은

우리를 보여주는 공간.


선생님은 그곳에 나무를 만들었다.


길게 이어지는 갈색 줄기에

초록 잎사귀를 붙였다.


반 아이들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의 장래희망을 꽃 모양으로 붙여 넣었다.




내가 아는 가장 힘센 직업은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을 적었다.


과학이라는 단어가 멋져 보였다.

그래서 과학자를 적었다.


하루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판사라는 직업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판사를 적었다.


축구선수, 교수, 소설가를 적었다.




바다를 보러 울진에 갔다.

바다를 향하여 걸었다.


하늘과 바다, 모래가 보였다.

하늘은 넓고

바다는 푸르고,

모래는 차분했다.


바다는 밀물로 들어와

내 걱정을 던지라 하였다.


모래에 나의 걱정을 적었다.

바다는 썰물로 모두 지워버렸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고민을 적어내고,

더 이상 적을 게 없었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보며 걸었다.


모든 게 모래로 덮여 있었다.

온통 모래 빛깔이었다.


그런데

꽃 하나가 있었다.


마르고 거친 모래 위에

선명한 꽃 하나가 있었다.


나팔꽃을 닮은 이 꽃은

갯메꽃


나는 한동안 이 꽃을 잊지 못했다.




어린 갯메꽃은 주변을 살폈다.


모래와

바람과

바다에게


커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물었다.


모래는 모래가 얼마나 튼튼하고 굳센지 알려주었다.

바람은 바람이 얼마나 빠르고 자유로운지 알려주었다.

바다는 바다가 얼마나 넓고 푸른지 알려주었다.


모든 걸 다 듣고 나서,


갯메꽃은

자신은 모래가 아니고,

바람이 아니고,

바다가 아님을 알았다.


갯메꽃은

모래와 바람과 바다를 보면서

진한 초록빛의 잎을 만들었다.

보드랍고 온화한 연분홍 꽃잎을 만들었다.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디서도 가져올 수 없던 자신의 빛깔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무슨 색이었을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우연히 만난

갯메꽃 한 송이는

아름다움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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