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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랑 Mar 02. 2018

배고파서 돌아왔어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2018

배고파서 돌아왔어


혜원(김태리)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시험에 떨어졌다.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에 살던 집으로 돌아와 혼자 삼시세끼를 맛깔나게 해결하며 자신을 재정비한다. 많은 별이 떠 있는 하늘과 달빛이 비치는 계곡, 흙냄새 등이 혜원을 감싸 안았고, 친구 은숙(진기주)과 재하(류재열)가 얼싸안았다. 서울에 오래 있을 것 같았던 혜원에게 은숙은 돌아온 이유를 묻기에, 혜원은 대답한다.


"배고파서"


서울은 허기를 달래기에는 불충분한 공간이었다. 가공된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컵밥을 먹으며 공부하는 것은 배고픔을 이겨내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혜원은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시간을 들여 가장 맛있게 요리한다. 마당에서 뽑은 배추로 전을 부치고 떡도 찌고 파스타에 봄꽃을 올려 장식에도 신경 쓰며, 심지어 막걸리까지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 마신다. 서울 생활에서 느꼈던 배고픔과 심적 허기도 채워낸다. 


엄마는 떠났지만, 기억은 남았다



혜원에게 모든 것, 엄마


혜원이 어렸을 때, 혜원의 아버지가 병에 걸려 요양차 처음 시골로 내려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엄마(문소리)는 혜원과 그대로 시골에 남았다. 엄마는 혜원의 기분을 살피고 헤아려주었다. 초등학생이던 혜원이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는 말에, 엄마는 지혜롭게 조언해주기도 한다. 시무룩해져 있는 어린 혜원에게 '크렘 브릴레'라는 엄마만의 간식을 해줘 기분을 풀게 해준다. 혜원에게 엄마는 모든 것이었다.

그러던 엄마는 혜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당시 어렸던 혜원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지를 구겨버린다(영화 말미엔 이해한다). 그 뒤로 '엄마 보란 듯이' 잘살아내겠다고 다짐하며 악착같이 살아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났던 혜원이 다시 시골로 돌아와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는 기억 속에서 자꾸 나타났다. "제발 좀 사라져 주라"라는 혜원의 독백에도 엄마는 계속 나타났고, 혜원과 소통하는 듯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혜원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음식에선 자꾸 엄마의 맛이 났다. 


귀농 장려 영화?




혜원의 친구 재하(류준열)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다시 시골로 돌아왔다. 꿈을 좇아 도시로 상경해 사무실에 자신의 자리가 있고 컴퓨터가 있고, 명찰을 목에 걸고, 반듯한 정장을 입으며 출근하지만 현실은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다. '바쁘게 산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 생활이었다. 회사에선 나를 잃고 전적으로 타인에게 맞춰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재하도 지쳤다. 시골로 돌아와 아버지 농사일을 거두며 몸은 힘들어도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게 낫다, 고 재하는 혜원에게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멍했다. 집에 돌아와 술 한잔 하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나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살고 있지만 영화 속 혜원처럼 좋은 재료로 멋진 요리를 해먹지 못한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아니, 사실 마음속의 여유가 없다. 이제 곧 30대를 마주하게 될 나는 무엇이 준비됐는지 계속해서 묻는다. 자책한다. 그러다 보면 더 여유가, 또 시간이 사라진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청년들이 많다, 고 들었다. 그들도 꿈을 좇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꿈이 모인 도시는 어쩐지 더 슬프게 느껴진다. 빌딩 숲 속에서 자연을 잊어버리고, 깊은 가을이면 밤을 줍고 곶감을 먹기 위해 감을 말리는 행위 따위도 잊었다. 


도시냐 시골(자연)이냐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결국 내 선택이다. 온전히 내 행복을 위해, 나를 찾기 위한 작은 숲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얼마 전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달간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단기로 집을 구하고, 그 나라의 음식과 문화와 자연에 잠시나마 녹아들 예정이다. 내 작은 숲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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