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망구다이
몽골 기병이 자주 쓰던 위장 후퇴술.
몽골 기병이 적진 코앞까지 뛰어들었다가 형편없는 전투력을 보이고 후퇴.
이에 적군은 이들을 얕잡아보고 뒤쫓다가 몽골 본대에 당함.
우리는 자주 실수를 합니다. 상대방의 진가를 알아보기도 전에 '이런 사람일 거야'라는 평가를 하면서 말이죠. 충분히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오해와 편견이 넘쳐납니다. 형편없어 보이는 몽골 기병들을 쫓다가 된통 당하는 경우를 우리는 실생활에서도 많이 겪기도 합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 전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했다가 알고 보니 정반대인 경우나 외모가 무섭게 생겨서 성격까지 괴팍하고 무서울 것이다, 와 같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에 속아서 보이는 프레임 속에 갇혀 사고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그에 대한 반론을 동물들의 행동을 통해 제시합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게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돌에 맞아 싼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 심성입니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P8~9, 효형출판사
많은 사람들은 쉽게 편을 가릅니다. 물론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그 사소한 오해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아무리 돌에 맞아도 싼 사람도 어떠한 동기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기만 한다면, 인간이란 심성은 결국 그 사람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랑으로 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정확하게 말하면 동물행동학자입니다. 주로 개미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왔기 때문에 개미 학자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이 책에도 많이 등장하는 것이 개미입니다. 현재는 제자들과 머리를 맞대며 실험과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또한 한 신문사에 칼럼을 지속적으로 연재 중입니다. 제가 알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동식물들의 삶을 짧은 글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놓아 매력을 느껴 이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 또한 게재한 칼럼을 다시 다듬고 책으로 발간한 것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7년 전입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러 저자가 당시 겪고 있던(2000년대 초) 정치 상황과는 괴리감이 느껴지긴 합니다(미국의 부시 대통령 이야기, 의료 분업 이야기 등). 그런 것을 감안하고, 핵심 주제는 동식물들의 특성이나 생활, 문화 들과 인간의 삶을 비교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식물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 자연의 파괴와 같이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種)에 의해 정복되는 생태계뿐만 아니라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의 무자비함도 함께 꼬집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네 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 [동물 속에 인간이 보인다],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동식물의 삶을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특히 꿀벌이 춤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꿀벌의 무리 중에 정찰벌이 있는데, 이 정찰벌은 좋은 꿀을 발견하면 집으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춤을 추면서 정확한 꿀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꿀의 방향뿐만 아니라 거리를 태양과의 각도를 따져서 말이죠. 이를 처음 발견한 공로로 폰 프리쉬 박사는 1974년에 노벨 생리 및 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갈매기는 일부일처제를 가장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으나 새끼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면 바로 결별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동식물은 인간보다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라고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연애 초반, 여자친구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울 때가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 중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온천으로 이동하려는 참이었습니다. 그 온천은 우리나라처럼 수건을 공짜로 제공하지 않고, 한 장당 천 원이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천 원이라도 아끼자는 의미로 수건을 챙겨가자고 했지만, 저는 굳이 천 원 때문에 수건을 들고 갔다가 젖은 수건을 들고 다니면서 관광을 할 생각에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 둘은 감정싸움을 하다가 서로 제각기 흩어져버렸습니다. 저는 무작정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포켓 와이파이가 저한테 있어서 여자친구와 연락이 안 된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땐 이미 시간이 더 흐른 상황이라 여자친구가 걱정이 됐고, 여자친구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며 이해했습니다. 결국 국제 전화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처음 싸웠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서 사과를 했습니다. 왜 그때 여자친구의 말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제 고집만 피웠을까, 하며 되짚어보는 계기였습니다.
이렇듯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 발생하는 싸움이 빈번히 일어나곤 합니다. 저 멀리 있는 사물을 더 잘 보기 위해 우리는 망원경을 이용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망원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개미 한 마리를 하찮게 생각해 쉽게 죽이고, 예쁜 꽃이 있으면 꺾고, 잠자리를 잡아 못살게 굴었던 그때의 저에게 만약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몰랐구나, 하는 뒤늦은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은 그런 망원경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과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생명들과 인간의 오감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매미가 우는 계절이 올 겁니다(점점 더 듣기 힘들어지지만). 우리가 시끄럽다고 느끼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암컷과 교감을 하기 위한 행동이니, 관찰만 하되 못살게 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부터 그래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