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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Jul 04. 2021

서랍장 꾹꾹이

사람이 하는 꾹꾹이에 대하여

꾹꾹이는 고양이만 하는 것이 아니다. 꾹꾹이는 '사람'도 한다. 


연애 중일 때는 몰랐다.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느라고 붙어있어도 상대방이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동거를 하지 않는 이상 데이트는 밖에서만 하니까. 연애를 오래 했어도 상대방을 완전히 다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오로지 '밖에서', 어쩌면 꾸며진 모습만 알고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연애를 한 지 5년쯤 됐을 때, 나는 상대방의 모습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복층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했는데 여자 친구도 들어와서 함께 살았다. 함께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도 많다. 굳이 밖을 나가지 않아도, 돈을 쓰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돈도 아낄 수 있고 밖에서 쓸 돈으로 집에서 맛있는 것을 해 먹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의외로 집에서 단둘이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방법도 많았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단순 동거였지만, 진정 가족이 된 느낌이었다. 


더욱 가족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여자 친구가 본인의 물건과 옷 등을 우리 집으로 들여왔을 때다. 서로 모든 걸 공유하는 느낌이었다. 자취하는 공간이 크진 않았지만 서로의 물건으로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정리정돈'이 필요했다. 나는 깔끔한 성격이다. 집이 어지럽혀지고 더러운 것들이 묻어 있으면 바로바로 치우고 닦아야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 여자 친구는 반대다. 어느 정도의 더러움과 지저분함은 사람의 면역력을 키워준다고 신봉하는 사람이랄까. 왜 사람은 항상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하고 만날까. 같이 살기 전까지는 몰랐다. '굳이 밖에서 데이트하는데 깔끔을 떨 이유는 없었으니까'라고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쓰고 착각이라 읽는다)을 했다. 하지만 '밖에서도 깔끔을 떨지 않는 사람'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나는 옷도 항상 깔끔하게 접어두거나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서랍장을 열었을 때 옷이 정돈돼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의 평화가 온다. 질서 정연한 옷들을 보며 만족한다. 외출할 때 서랍장을 열고 옷을 집어 입을 때의 기분은 마치 새 옷을 입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자 친구의 정리정돈 방법은 '꾹꾹이'다. 먼저 서랍장을 열기도 힘들다. 질서라고는 찾을 수 없는 옷들이 구겨지고 서로 엉켜 있는 상태로 서랍장에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서랍장을 열려고 하면 위에 칸도 함께 딸려오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여자 친구의 서랍장을 한번 열려고 하면 위 칸을 붙잡고 열어야 한다. 외출 후 여자 친구는 옷을 벗어서 서랍장에 옷을 '꾹꾹' 눌러 닫는다. 정리 끝! 을 외치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뭐가 끝났다는 건지, 그냥 옷들이 밖에 굴러다니지 않게만 하는 것이 정리인지, 헷갈렸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허탈감이 몰려왔고, 청소와 정리는 다 내 몫이겠구나,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왔다.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결혼을 한 지금도 청소와 정리는 온전히 내 몫이 됐다. 그렇다고 항상 서랍장 꾹꾹이를 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고치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자기 나름의 스타일이 있는데 내 것이 옳다며 강요하는 게 맞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이 있는 여유로운 주말에 날을 잡고 서랍장을 빼서 같이 옷을 접어 정리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명절처럼 1년에 두 번 정도 있는데 겨울 옷을 치우고 여름옷을 꺼낼 때와 여름옷을 치우고 겨울 옷을 꺼낼 때이다. 그 외에는 항시 꾹꾹이를 하며 살아간다. 


와이프의 꾹꾹이를 보며 나는 마음속 화를 꾹꾹 참으며 같이 꾹꾹이를 했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그리고 알게 됐다. 꾹꾹이는 고양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 등짝 스매싱과 함께 와이프의 동의를 얻어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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