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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Sep 21. 2021

아들이라는데요.

네, 아들이래요.

"너 같은 아들 낳아봐야 부모 마음 알꺼다."

- 엄마 잔소리복음 제1장 1절


"아들내미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

- 엄마 잔소리복음 제1장 2절




처음 임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성별 상관없이 그저 좋았다. 내가 부모가 된다는 책임감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주수가 지나고 성별을 알 수 있는 16주가 다가오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일까? 딸일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이 이내 나의 짧은 인생, 즉 아들로서의 삶을 반성하는 시간이 됐다. 나는 부모님에게 과연 어떤 아들이었을까? 부모님은 요새 들어 나에게 무한 칭찬을 쏟고 계시지만, 그러지 않았을 때가 더 많았다. 나는 대학교도 집 근처로 통학을 하며 다녀서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보니 잦은 의견 다툼이 있었고 결국 나에겐 '독립'이 목표가 됐다.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무작정 서울에 자취방을 구하고 직장을 구했다.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마음껏 내 삶을 즐길 자유가 생겼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듯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달성하는 순간 좋은 감정보다는 허무한 감정이 더 커서 목표를 정해놓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딱 그랬다. 독립했다는 기쁨은 몇 개월 가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독립을 했더니 부모님과 사이가 더 좋아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져야 되는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그렇지 않나보다. 같이 있긴 싫고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걱정되는 그런 이상한 관계. 붙어 있을 때는 얼굴도 잘 안보고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이야기도 잘 안나눴는데 독립하고서는 자주 카톡이나 전화를 하는 등 사이가 애틋해졌다. 그나마 나는 막내여서 징그러운 애교(?)를 많이 부리며 컸지만, 나와 3살 차이 나는 형은 무뚝뚝의 끝이었다. 형은 부모님과 연락도 잘 안하고 왕래도 하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연락을 주고 받았다. 아들이 둘이나 있어 엄마가 외로웠을 것이라는 주위의 말들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됐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직도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신 때면 좋아하시는 물건을 선물로 드리기보다는(좋아하시는 게 뭔지도 모른다. 흑흑.) 그냥 현금으로 드리곤 했다. 현금으로 본인이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을 사서 쓰시라는 의미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올해 엄마 생신 때 와이프가 화장품을 선물로 드리자는 말에 엄마는 현금을 더 좋아하실 거라고 회피했다. 왜냐하면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나는 모르니까. 하지만 와이프는 엄마가 쓰는 화장품 브랜드를 알고 있었는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그 화장품을 사서 선물로 드렸다. 엄마는 이상하게 현금으로 드렸을 때보다 더 좋아하시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쓰는 브랜드를 어떻게 알았냐,며 이건 다 우리 oo(와이프 이름) 덕분, 이라며 보자기에 싸인 화장품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을 해놨을 때, 나는 '내 자식이 제발 아들이 아니었으면' 했다. 물론 모든 아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


16주가 됐을 때, 드디어 아기의 성별을 듣는 날이 되었을 때,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와이프는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갔다. 간절히 바라면 (반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와이프는 우리 아기가 '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여러번 와이프에게 되물었고, 와이프는 여러번 나에게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여러번 들은 '아들'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렸고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체념했다. 그래,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 좋지... 나 같은 아들이면 어떡해... 그럼 나한테도 무관심할 거 아니야.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인건가...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반성은 앞으로 내가 아들로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조금 있으면 태어날 아들이 어떤 사람일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어떤 아이가 태어나든 나는 부모로서 무한한 사랑을 줄 것이고, 내가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것이다. 


일단 먼저, 다른 건 다 필요없으니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 초보 부모의 간절함복음 제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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