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세준 Nov 21. 2021

그깟 천 원 때문에 싸웠던 날

싸움의 이유는 '사소함'에서 온다

그런 날이 있다. 여자 친구(지금의 와이프)와 싸울 것 같은 날. 그래서 조금 더 조심해야 될 것 같은 싸하디 싸한 기분이 드는 날이랄까. 싸움은 조심해서 된다고 예방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껏 자세를 낮추고, 가드를 올리고 여자 친구를 영접해야 하는 날.


몇 년 전,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날씨는 좋고, 여행 계획은 완벽했다. 평소 여행 코스를 전혀 계획하지 않고 다니는 스타일이지만, 둘이 일본 여행은 처음이고 기분은 들떴고 가고 싶은 곳은 많고 해서 어딜 갈지 코스를 계획했었다. 일본 하면 어딜 가야 하는가? 바로 '온천' 아니겠는가. 우리는 출발하기 전부터 뜨끈한 물에 몸을 담글 생각에 들떴다. 또 겨울이라 공기는 찬데 물은 따뜻한 언밸런스에서 오는 안정감, 모순된 것을 느낄 수 있는 노천탕까지 기대 만발이었다. 노천탕에서 즐기는 여유, 그 이후에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우유 한잔까지.


우리가 가기로 한 온천에 대한 정보를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티켓은 어떻게 구매해야 하는지 등을 찾아보았다. 미리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막상 갔을 때 덜 헤매니까. 그렇게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아, 물론 씻는 건 빼고. 온천에 가서 씻을 껀데 미리 씻고 간다는 건 목욕탕과 온천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렇게 만발의 준비를 다하고 출발하려던 그때 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수건은 따로 우리가 챙기지 말까?"


마치 사라예보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것처럼, 내 말은 한 발의 총성처럼 울려 퍼진 듯했다. 나는 평소 돌아다닐 때 손에 뭘 들고 거추장스럽게 다니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최대한 주머니에 넣고 두 손 자유롭게 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가지고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온천에 갈 때도 편하게 지갑만 들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 수건 있는데. 온천에서 한 장 사면 100엔(1,000원)이야. 뭐하러 그래, 그냥 우리 꺼 있으니까 가져가자."


아마 여기서 내가 수긍했다면 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으리라(이 글을 쓰기 위해 싸웠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다. 여자 친구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돈이 얼마가 됐든 굳이 안 써도 될 돈을 쓰는 것에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단돈 1,000원일지라도. 특히 여행을 갔을 때 여행비를 계산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게 효과적인 여행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의 철없는 나는 수긍하지 않았다.


"들고 다니기도 귀찮고, 얼마 안 하니까 그냥 가서 사면 안 될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는 말을 여기서 쓰는 것만큼 적확할 표현이 있을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의 늪으로 빠졌고, 점점 감정은 격해지고 고조되기 시작했다. 아마 서로의 스타일을 알았더라면, 서로 이해했을 텐데, 연애를 한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라 서로를 이해하는데 부족했다. 또 당시 여행의 피로 누적으로 둘 다 어쩌면 예민해져 있었을 것이다.


"내가 들고 가면 되잖아."


이것은 더 이상 반기를 들지 말라는 하나의 선언이자 그만하라는 메시지였다. '들기 귀찮아하는 너보고 들라고 하지 않을 테니 여기서 그만 말하자'의 의미였으리라. 왜 이리도 싸움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커지는 것일까. 싸울 때 이성을 잃고 자제력과 판단력이 희미해질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별거 아닌 일을 그때는 그게 뭐라고 서로 싸웠나 싶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감정이 상했고, 걸어 다닐 때마다 잡던 손도 놓고 거리를 유지한 채 걸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각자 갈 길을 갔다.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 떨어졌다. 그러나 불과 몇 미터도 가지 않고 나는 걱정이 돼서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러나 여자 친구도 이미 상할 대로 상한 감정을 가지고 어디론가 걸어가버렸다. 전화도 문자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빌려온 포켓 와이파이를 여자 친구가 들고 있어서 나는 그야말로 먹통 상태였다.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사그라들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간 걸까.


다행히 여자 친구도 화를 누그러뜨리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엉거주춤 다가가서 미안하다, 고 사과했고 그렇게 '1,000원 전쟁'은 종식되었다. 단편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싸우는 상황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피하자. 그러다 만약 싸우더라도 현명하게 싸우자. 싸운 원인에 대해서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과거에 어땠느니 하는 최악의 말은 하지 말자.


그리고, 와이프 말을 잘 듣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라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