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썬>
아빠와의 추억
어린 나이에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빠가 맨날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만 보고 있는 모습, 자고 있는 것 같아 채널을 돌리려고 하면 보고 있다고 말할 때 흠칫 놀랬던 기억은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아빠와의 추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다시 복기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렇다. 더군다나 아빠는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셔서 집에는 한 달에 두어 번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다 주말에 오시면 아빠가 좋아했던 낚시를 함께 갔던 게 열한 살 쯤의 기억이 전부다. 인구가 몇 안 되는 소도시에 살면서 주변 강가에 가서 아빠랑 같이 낚싯대에 미끼를 끼우던 모습. 따사로운 햇살과 강물의 흐름, 잡히지 않는 물고기. 파편처럼 기억들이 튀어 오른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른다.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고 변형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애프터 썬>도 바로 그런 영화다.
아빠를 이해하기 위한 딸의 몸부림
샬롯 웰스 감독의 데뷔작 <애프터 썬>은 잔잔하고 고요 그 자체다. 20여 년 전, 열한 살의 소녀 소피와 31살 젊은 아빠 캘럼이 함께 떠났던 2주 간의 튀르키예 여행을 그린 영화다. 이것을 20년이 흐른 현재 시점의 31살의 소피가 그때 찍었던 캠코더 화면을 보며 건져올린 사실과 기억이 혼재돼 있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기억이 혼재돼 있다는 의미는 영화 중간중간 캠코더 화면을 보여주는데, 당시 녹화했던 영상은 4~5개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장면들은 현재의 소피가 기억하는, 그러니까 100%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고 변형되며,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영화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소피는 그 당시의 아빠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어른이 된 소피는 동성 연인과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다. 아마 아기가 생기면서 부모의 책임감,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 그것을 넘어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은 대체 날 어떻게 키웠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의 출처를 소피는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겪는 버거움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도 켜켜이 쌓여 응축된 기억 속에 때론 불안정해보였던 아빠의 모습을 건져올리면서 소피는 알아차린다.
튀르키예 여행 시점에 소피의 부모는 이미 이혼한 상태며, 소피는 엄마랑 살고 있고 가끔 아빠랑 시간을 보낸다. 완전한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애도 아닌 열한 살의 소피의 눈에는 그런 상태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소피는 아빠에게 묻는다. "서로 같이 살지도 않으면서 왜 사랑한다고 말해?"라고. 소피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른들의 사랑과 큰 차이점을 보인다. 어린 소피는 어른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아련하고 쓸쓸한 장면으로 꼽고 싶다.
소피는 방 의자에 앉아 몰래 어른들이 읽는 잡지를 읽고 있고, 캘럼은 변기에 앉아 팔에 두른 붕대를 뜯어내고 있다. 벽 하나를 두고 두 모녀의 모습을 한 카메라에 담아내는 데, 서로 상반된 입장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탁월하다고 느껴졌다. 캘럼이 소피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지만, 툭하면 터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처럼 느껴진다. 열한 살의 소피는 몰랐지만, 성인이 된 소피는 아픔을 최소한 아이 앞에서는 숨기고자 했던 무거운 책임감을 이제 깨닫는다.
영화에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캘럼은 우울과 같은 어떤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겪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불안정하지만 딸을 위해서 내색하지 않고 감내한다. 티 내지 않으려 캘럼은 태극권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며 심신의 안정을 도모한다. 전쟁에 나선 지휘관이 위축돼 있고, 무서워하면 부하들도 동요하듯이 캘럼은 이 악물고 버텨내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아이 앞에서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질 것이 뻔하므로. 하지만 때론 슬픔이 파도처럼 쓸려오듯이 침대에 앉아 펑펑 우는 캘럼의 뒷모습을 보여줄 때,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이 악물고 버텨내려 노력했다. 소피가 그때의 아빠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영화 제목의 의미(*개인적인 추측)
영화의 제목인 '애프터 썬(after sun)'의 뜻은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듯 강렬한 햇빛에 피부를 보호하고자 캘럼은 소피의 몸에 선크림을 정성스럽게 발라준다. 뿐만 아니라 캘럼은 어린 소피에게 호신술을 '진지하게' 알려준다. 누군가 소피를 해하려 할 때 방어하기 위한 기술들을 알려주는데, 소피는 장난스럽게만 받아들인다. 자신이 이러한 기술을 사용할 때가 있을지, 더 나아가 그러한 상황이 오면(오기도 전에) 아빠가 든든하게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캘럼은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고 강하게 교육한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옆에 존재할 것 같은 아빠가 무너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할 수 있다. 영화에서 소피가 아빠한테 전수받은 호신술을 사용하는 장면이 딱 한번 등장하는데, 리조트 오락실에서 만난 같은 또래인 '마이클'이 리조트 지도를 보고 있던 소피에게 장난을 치려고 뒤에서 놀라게 하다가 소피의 호신술로 인해 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이처럼 악의가 있든 없든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된다. 그런 점을 아빠는 가르쳤다.
영화의 마지막은 모든 여행을 끝마치고 소피를 배웅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끝난다. 엄마에게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소피, 그 모습을 캠코더로 찍는 캘럼. 왜 둘은 함께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른이 된 소피는 왜 아빠를 '추억'하고 있을까? 짐작컨대 그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캘럼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소피가 자신이 부모가 된 시점에, 또 아빠 나이가 된 무렵에, 아빠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당시 자신이 너무 어려서 몰라서 보지 못했던 작은 조각들을 그러모아서 아빠를 이해하려 퍼즐을 맞춰보는 몸부림이자 발버둥처럼 보인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마지막처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순간은 진정으로 마지막이 되어야 마지막인 줄 알게 되는, 말장난과 같으며 비극과도 같다. 2주 동안 아빠와 떠났던 여행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소피를 보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그것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가족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