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지 말길
아이가 없었을 때는 아이를 데리고 몇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는 부모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입장이 되어보니 백 번 천 번 이해가 되었다. 또 좋은 식당이 아니더라도 남들 다 하는 외식을 아이가 있다고 해서 못할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아이가 있든 없든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을 '있는 그대로' 맞이해 주는 곳이 아무래도 나는 좋다. 그런 곳이 내가 사는 동네에 있다면 당연히 단골처럼 매번 찾아갈 것 같다.
늘어나는 노키즈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얼마 전 두 살 배기 아이와 함께 국회 기자회견에 나섰다. 아들이 있는 부모로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용혜인 의원은 현재 아이들을 향한 차별의 심각성과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성)를 향한 맘충과 같은 공격이 도를 넘었으며, 그 증거로 노키즈존의 확대라고 진단한 듯하다. 단순히 노키즈존이 한 개인의 사업장이 아니라 공공시설로까지 퍼지는 것을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스타 ‘핫플’이라 불리는 카페와 식당, 심지어는 공공이 운영하는 도서관조차 노키즈존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공공시설부터 노키즈존을 없애나가자. 공공시설조차 합리적 이유 없이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 국가 차원의 공공시설 어린이 접근성에 대한 촘촘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만 16세 이상부터 출입이 가능하고, 지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도 비슷하다. 물론 어린이도서관이 있지만, 초등학생들은 중간 지대에 속해 어린이 도서관을 가기도 일반 도서관을 가기도 애매하다. 굳이 연령 제한을 두지 않아도 상식적인 부모라면 어린아이를 조용한 도서관에 데리고 가진 않을 것이다.
또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노키즈존이 10배라고 한다. 이제는 아이들의 입장이 허용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해야 될 것 같다. '반려동물 출입 허용'과 같이 미리 알아보고 가야 될 지경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주도의회에서 노키즈존을 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조례를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강제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인식을 전환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고 정책입안자들도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환경 속에서 자란다
노키즈존은 '피해받는 것'과 '피해 주는 것', 이 둘을 극히 경계하는 현대 사회문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노키즈존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부모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돌아다니며 체험했고, 그 과정에서 성장했다. 때론 진열돼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져 떨어뜨리기도 하고, 옆 테이블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달라고 요상한(?) 짓을 하며 귀찮게 하기도 했다. 내가 이러한 행동을 했을 때 부모님은 해당 주인에게 사과하고, 요상한 짓을 나에게 그만하라며 멈추게 했다. 그걸 통해 나는 하면 안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행동은 상상할 수가 없다. 만약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SNS를 중심으로 '000 카페에 맘충, 빌런 등장'과 비슷한 제목으로 영상이 빠르게 퍼질 것이다(다행히 나는 남자고 아빠라서 욕을 안 먹을 수 있다. 공격은 항상 약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이래서 노키즈존이 필요해"라는 댓글을 비롯하여 해당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의 신상 정보는 다 털릴 것이다.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나는 그래서 14개월 아들과 카페를 가더라도 아기 의자에 앉힌 후 내 의자에 꼭 붙여놓는다. 옆 테이블에 호기심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계속해서 아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그 카페는 노키즈존으로 바꾸지 않을 것이고, SNS 영상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남의 영업장을 헤집고 다니고, 놀러 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들을 온전히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온 다른 사람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왔으므로 당연히 즐길 거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남의 영업장에 피해 주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 다만 극소수의 이러한 아이들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 아동학대를 하는 일부 보육교사 때문에 직업윤리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보육교사가 욕먹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보육 교사가 아동학대를 하지 않듯, 모든 부모들이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즉 모든 아이들의 입장을 막는 노키즈존은 빈대 하나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규칙을 체득하며 사회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의 예절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때론 인스타 핫플레이스를 가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멋진 풍경을 즐기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에티켓과 매너를 지키는 부모를 비롯한 다른 어른들의 모습들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국가 자체가 노키즈존
우리나라 출생률은 0.78명이다. 많은 인구학자는 "국가적 위기"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갖가지 혜택을 비롯한 유인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결혼할 사람, 결혼한 사람,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 등에게 썩 와닿지 않는다.
저출생을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간 수백 조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결과는 참담하다. 즉 아동 한 명당 얼마 되지도 않는 현금성 지원으로는 택도 없다. 공중부양을 선보이는 한 정치인의 선거 공약처럼 출산 시 몇 천만 원 또는 억 단위가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현금성 지원을 대단한 정책 홍보 수단으로 사용한들 소용없다. 노키즈존과 같이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맘충이라고 욕먹는 상황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대한민국 자체가 노키즈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