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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Nov 24. 2023

직장 동료를 집 근처에서 마주쳤을 때

아는 척한다 vs 안 한다

(속으로) 날 봤을까...? 먼저 인사해야 되나...? 못 본 것 같은데 그냥 하지 말까...? 그냥 뛰어내릴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주말 오후. 그것도 3시, 4시처럼 애매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앞 상가에 있는 병원을 자주 다니는데, 사람이 많이 붐비는 오전 시간을 피할 목적으로 일부러 그 시간에 집을 나섰죠. 당연히 옷은 거적때기를 주워 입은 양 아무거나 걸쳐 입었고 세수도 겨우 했습니다.


병원이 있는 상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프면 꼭 주말에 아프더라."는 직장 상사의 말처럼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는데요. 지하 3층부터 5층까지 층층마다 빠짐없이 엘리베이터는 멈춰 섰습니다. 저는 고개를 스마트폰에 푹 박고서는 사람이 타면 종종걸음으로 뒤로 물러서며 저의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섰을 때 저는 버튼기 앞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요. 문이 열리고 대여섯 명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데, 그 순간 보았습니다. 너무 익숙한 얼굴을.


팀은 다르지만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직장 동료였습니다(친하지도 않아요). 과연 그 사람도 저를 봤을까요? 저는 직장 동료임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행히 직장 동료는 제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거 같았습니다. 상가가 큰 건물이라 입점해 있는 상점들이 굉장히 많아서 '설마 나랑 같은 병원에 가진 않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려고 하는 병원은 4층에 있는데 직장 동료와 함께 탄 이후로 엘리베이터는 슬로우 모션에 걸린 것처럼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2층, 3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도 직장 동료는 내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엘리베이터의 공간은 넓어졌고... 직장 동료가 더 잘 보이고... 저는 더 필사적으로 시선을 스마트폰으로 고정시켰습니다. 4층에서 문이 열리자 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제일 먼저 뛰쳐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죠. 접수대에서 제 이름을 적고 땅만 보고 대기실 로비 의자에 앉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진료 순서를 보여주는 모니터가 있었네요. 떡하니 제 이름이 있고, 바로 뒤에 직장 동료에 이름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제 이름이 흔하지 않아서 직장 동료도 알았겠죠. 병원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마치 저와 직장 동료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어서 제 이름이 불리고 진료를 보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몇 분을 기다리자 다행히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었고, 끝내 아는 척하지 않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러다 주말이 지나고 회사 탕비실에서 그 직장 동료가 이야기하더군요. 자기도 봤다고. 결국은 서로 보았지만 서로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 <가짜 사나이> 갈무리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참 애매한 듯합니다. 관계를 굳이 구분하자면 가족이나 친구도 아닌 지인이기 때문입니다. 지인도 가까운 지인이냐 아니냐는 직장 내에서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있냐가 영향을 미치죠. 요새는 퇴근 후 회식이 많이 줄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조직문화가 이미 스며든 회사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더욱 공(일)과 사(개인)의 구분이 더 엄격해졌습니다.


저는 프로이직러입니다. 회사 옮긴 것만 해도 다섯 번이네요. 그러다 보니 나름 회사 분위기와 조직 개개인의 특성을 빨리 파악하고 금방 적응합니다. 어떤 회사는 직장 동료와 사적으로도 친하게 지내서 퇴근 후에 만나거나 주말에도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해외여행까지 같이 가는 곳도 있었습니다. 반면,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 관계'처럼 딱 주어진 시간에 일만 하고 사적으로는 전혀 개입하거나 물어보지도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어느 게 좋은지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분위기의 중간값은 없고 극과 극뿐이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마주친 직장 동료를 아는 척 안 한 이유는 바로 지금 다니는 회사가 비즈니스 관계가 매우 강한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직장 동료의 사적인 정보를 전혀 모릅니다. 굳이 물어보지도 않고요. 직장 동료들도 저에게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깔끔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이 없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러한 분위기를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생활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저녁에 회식 한번 한 적이 없으니까요.


이러한 조직 분위기의 단점은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직원 모임'과 같은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공식적으로 회사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에 직원끼리 밥을 먹고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데요. 직원들과 사이가 어색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 자체도 마냥 즐겁지 않고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스몰 토크조차 억지로 쥐어짜 내고, 물어볼 게 없어서 질문은 계속 헛돌고 답변도 어긋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 날씨 이야기가 이쪽저쪽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결국엔 일 얘기로 귀결되곤 합니다. 차라리 빨리 식사를 끝내고 영화를 보든 볼링을 치든 대화를 하지 않는 활동을 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사적으로 친해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만나며 지내고 있는데요. 마음 맞는 사람끼리 친해지는 건 당연한 순리이지만, 현 직장에선 대화가 없다 보니 마음이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 직장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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