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게 드는 양가감정
이사를 했다. 2023년 7월, 입주를 앞두고 '순살 자이'의 불안감을 담아 브런치에 글을 올렸었는데(링크), 시간이 빠르게 지나 터를 옮겼다. 큰 가전이나 가구들은 대부분 버리거나 필요한 가족에게 물려주고 새로 구입했다. 냉장고부터 워시타워, 식기세척기 등 필요한 가전과 침대, 책상, 책장 등 가구까지 와이프가 꼼꼼히 시간을 들여 골랐다. 이러한 구입비용이 한두 푼한 게 아니고 꽤나 거금이 들어감에도 길게 보고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눈이 높아졌다. 원래는 3~4만 원 하는 것도 비싸서 망설였는데, 이사하며 필요한 물품을 살 때만큼은 거침없이 카드를 긁었다. 긁으면 긁을수록 눈은 높아지고, 집에 필요하다고 해서 샀는데도 뭐가 계속 부족한 느낌이었다.
국민가게 다이소를 탈탈 털어도, 깔끔한 느낌의 모던하우스를 가도, JAJU를 자주... 가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이사 후 허전함은 여전했다. 입주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카카오톡방에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저마다 '카드값을 얼마를 썼다'며 카드 내역서를 공유하며 탕진 자랑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마음만은 공감할 수 있었다. 생애 처음 집을 얻은 만큼 소중한 내 집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리라. 이를테면 행주는 행주걸이에, 키친타월은 키친타월 걸이에, 밀대는 밀대 걸레 후크봉에 꽂기 위해서는 디자인, 공간배치, 훅이 버틸 수 있는 무게 등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게 신경을 쓰다 보면 '정리를 위한 정리'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구입하게 되는데, 구입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쿠팡이다. 쿠팡은 참 편리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쿠팡 기사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기도 한다. '내가 편한 이유는, 타인의 고생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나처럼 택배를 기다리는 걸 딱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로켓배송'은 주문하면 빠르면 당일, 늦어도 다음날이면 받을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밤낮없이 택배 물품을 분류하고, 차에 싣고, 배송해 주는 기사님이 있기 때문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날씨는 로켓배송을 막을 수 없다.
2023년의 끝자락인 주말에 눈이 펑펑 왔다. 전날 필요한 물품이 또 생겨서 쿠팡으로 주문해 놓았는데 쏟아져 내리는 눈을 보며 괜스레 걱정됐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택배를 기다리고, 기사님을 그걸 위해 미끄러워진 도로를 달리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기로 한 택배는 정확하게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는데, 겉포장지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쿠팡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이미 내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오프라인 마트와 가격을 비교하더라도 쿠팡이 더 저렴하며 할인도 많이 하고, 거기다 배송까지 빠르다. 스마트폰으로 슥슥 스크롤을 내리며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클릭 몇 번으로 결제까지 할 수 있으니 엄청 간편하다.
간편함에 속아 주문을 꽤나 많이 했더니 점점 비어 가는 통장을 보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통장에 이제 돈이 없으니 다음 주문 때는 신용카드로 긁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