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랑 Jul 13. 2023

'순살 자이'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요

생애 첫 집이 생겼다는 기쁨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각종 행사에서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이벤트인 행운권 추첨에도 당첨돼 본 적이 없는 저는 무려 자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습니다. 그동안 당첨되지 않았던 불운에 대한 보상이었을까요? 저와 와이프는 기쁨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넘어 포효했습니다. 청약 당첨으로 집 걱정은 덜어냄과 동시에 집값 걱정이 생겨나긴 했지만요. 집값이야 없는 돈 있는 돈 박박 긁어모...아도 한참, 아주 한참 모자랍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은행이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빚을 지고 산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은행에 빚 지고 살아보려고 합니다(뭐든지 이렇게 극단적이네요).


당첨되고 얼마 후에 난생처음 모델하우스라는 곳에도 방문을 해봤습니다.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천국이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했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짜증 내는 사람이 없었죠. 북적북적하다 보니 어깨를 부딪히거나 발을 밟아도 웃습니다.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습니까?


계약서를 작성하고 아파트 내부 구조를 똑같이 옮겨놓아서 미리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가전가구의 사이즈도 예측할 수 있었죠. '이 방은 내가 쓸 거야', '아닌데? 내 방인데?' 하며 그때만큼은 알콩달콩한 신혼부부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말인 입주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여러 커뮤니티에 인테리어 고수들이 올려놓은 사진과 각종 정보들을 저장해 놓으며 와이프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다른 동네에서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가 무너졌다


지난 4월, 입주 예정자들이 접속해 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시끄러워졌습니다. 각종 언론사에서 방송 영상과 뉴스 기사 들의 링크가 수도 없이 채팅창에 올라왔습니다. 거기다 입주 예정자들이 '우리 아파트는 괜찮은 거냐'며 걱정 어린 메시지도 더해졌죠. 천천히 읽어보니 인천 검단신도시에 새로 짓고 있는 자이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입주를 불과 5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고 합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파트는 괜찮을 거야'하며 근거 없이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저보다 더 걱정하는 와이프 앞에서 무덤덤한 척했지만, 사실 붕괴한 아파트의 시공법, 건축 자재 등이 제가 입주할 아파트와 무엇이 다른지 찾아보기도 했습니다(봐도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지난 6일 정부는 붕괴의 원인으로 철근 누락과 설계도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뒤 시공사인 GS건설은 전면 재시공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지었던 걸 무너뜨리고 다시 새로 짓겠다는 것이죠. 그런다고 해서 입주 예정자들의 무너진 마음은 재시공이 될까요? 불안감이 사라지고 신뢰가 생겨날까요? 입주 날짜에 맞춰 월세나 전세를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입주가 미뤄진 것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물론 GS건설 차원에서 입주자들에게 보상을 한다고 한 것 같은데, 그걸로 충분한 보상이 될지 의문입니다. 정부 발표에서 빠진 것은 앞으로의 대책입니다. 부동산 열풍으로 우후죽순 늘어나는 신축 아파트가 안전하게 짓고 있는지 감시하고 조사하는 기능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눈 깜짝할 새 완성해 있는 요새 아파트들을 보며 사고가 안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제가 올해 말 입주할 자이 아파트는 이제 '순살 자이'가 되었습니다. 제 친구는 제가 치킨을 순살만 먹으니까 잘 어울린다며 자조적인 유머를 날리더군요. 작명 센스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렇게 적절하게 이름을 짓고 하나의 밈(meme)이 되어 퍼지는 건 역시 순식간입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 평택 지제역 자이의 지하주차장에 물이 새고, 서울역 센트럴자이 외벽은 금이 가는 것을 보면 부실시공이 만연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비단 자이 아파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파트 외벽에 철근이 그대로 노출된 롯데캐슬은 '통뼈 캐슬', 폭우로 물이 새 주차장이 바다가 된 푸르지오는 '물 흐르지오'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이라는 점입니다. 새집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가지고 입주했지만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부실시공의 흔적을 보며 더 이상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잘 아시다시피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가지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경미한 사고를 겪고 300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인 2022년 1월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광주시 화정 아이파크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참사로 인해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습니다. 수백 번, 수만 번의 징후는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그저 별일 아닌 듯 치부했기 때문에 대형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입주를 약 4개월 정도 앞두고 있는데 기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습니다. 아파트가 붕괴되는 것을 보며 제 기쁨도 함께 붕괴됐습니다. 불안하고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장난 개구리 장난감을 갖고서 '내원' 해봤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