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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Oct 21. 2023

크리스마스 악몽으로의 초대

전지적 어른이 시점

따스한 햇살을 전해주는 선물에 반짝이는 윤슬로 감사 인사를 대신하고 있는 바다위를 달리고 있다. 인천대교의 길고 긴 교량은 도로를 따라 넓다랗게 펼쳐진 주탑의 위상과 위엄있는 자태로 도로위의 손님들을 환대해주는 바다의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해 준다. 신이 난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탄사도 잊지 않고 저장해 두었다. 오늘의 계획이 탄탄대로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날이다.


두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파라다이스시티호텔의 아트 스페이스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어디든 크리스마스는 축체분위기로 복잡한 인파를 예상해야 하지만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선사해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호기롭게 축제의 장에 발을 디뎠다.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영화같은 신나는 이 축제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사실 아이들보단 오랜만에 북적북적한 곳에서 느껴지는 활기로 어른이가 더 신이 나 있었다. 가 이만큼 준비했으니 우리의 하루가 팀버튼의 영화만큼 좋은 날이 될수 있으리라.


솜사탕을 먹고싶어 하는 아이와 함께 한시간이 넘도록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줄에 지쳐가는 아이의 표정은 점점 짜증과 피곤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를 설득해 다른 푸드코너를 찾아야 했지만 솜사탕이여야만 했던 아이는 계속 솜사탕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포토존을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 또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오래 걷기를 포기한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아 2층 테이블이 줄지어 있던 곳을 어슬렁 거리다가 결국은 무대가 그나마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리석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심취하고 싶은 기분따위 중요하지 않은 아이들은 이미 인파속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원하지 않는 걸음을 옮겨야 하는 이상황이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의 오너먼트와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이 분명해'를 보여 줄 멋진 공연들, 한껏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의 옷차림과 축제분위기를 즐기러 온 열기, '여기까지 왔으니 인증샷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아요'라고 얘기하는 포토존, '이날을 기억할 제품으로 나를 사주세요'라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굿즈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하얀 눈과 매서운 추위까지. 이 모든것들을 만끽하는 하루를 기대하며 벅찬 가슴으로 먼 길을 달렸더랬다.


결국 눈물로 "나는 지쳤어요"를 말해주는 아이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아직 이 신나는 분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여인의 영혼을 끌어안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어린이같은 자아를 토닥거지만 아이의 시선에서 생각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팀버튼의 영화제목은 <크리스마스 악몽>임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잭이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전하고 싶어 야심차게 준비한 신나는 임무로 결국은 산타를 위험에 빠뜨리고 전 세계의 착한 아이들에게 악몽을 만들어준 그 날 처럼 아이들에게 힘든 기억을 안겨준 하루가 되어 있었다.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어둑해진 하늘밑으로 지쳐있는 아이들과 아쉬움을 뒤로 한 여인의 모습이 한 공간에 집약된 채로 인천대교를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동안 붉은 빛 노을이 점점 사라지고 어둠이 깔린 밤풍경에 더 밝게 빛나는 조명으로 몇시간 전의 위상을 더 여실히 품고 있는 주탑에 다시 아이들의 탄성이 흘러나온다.


각근히 준비했던 계획에는 없던 그저 지나가는 여정의 정거장쯤으로 생각했던 이곳이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순간인 듯 보였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고 엄마와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을 안겨주고 싶었던 마음이 인천대교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있었다.


해질녘 인천대교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즐거움은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이는 별과 축제의 열기가 아니였다. 달달한 솜사탕의 포도당쯤으로 충만될 소소한 즐거움이였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오늘 어땠는지 마치 열심히 준비한 노력의 대가라도 바라는 것처럼 물었다.


"이 다리를 건널때가 제일 좋았어. 바다도 너무 예쁘고 조명도 너무 예뻐"


크리스마스다운 오늘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리스마스답지 않은 선물을 한 건 아닌지 미안해졌다. 차라리 인천대교를 지나 송도의 한 카페에 들어가 편하게 앉아 따뜻한 코코아가 담긴 컵에 손을 갖다 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걸 그랬는지. 분명 카페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려 관련 음악을 틀어줄테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카페를 한껏 꾸몄을 수 도 있 텐데.


결국은 오늘의 주인공이 크리스마스 축제가 아니라 인천대교였을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간 준비해던 계획의 기대치 못한 성과에 조금은 기운이 빠즐거워 할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했던 예상은 확실하게 빗나가 있었다. 한시간을 기다려도 살 수 없었던 솜사탕처럼 아이들의 즐거운 기분을 사기란 지 않았다.


어른이(어른 + 아이)는 아직 덜 성숙한 자아앞에서 어른인 척 어른 흉내를 내어 보지만 어린이처럼 작아진 내면을 숨기려 무던히도 애를 써본다. 아직 축제의 아쉬움에 목마른 영혼을 채찍질해보면서 말이다.


Photo by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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