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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May 25. 2024

꽃길을 걸어볼까

지나고 나면 기억으로 남듯이

5월초입의 바람은 아직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서늘함이 있다. 열이 많은 아이는 아침마다 반팔티를 입고 외투를 자주 입지 않으려 해서 늘 챙겨주곤 한다. 감기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는건 나 뿐이다.


가디건 하나에 의지하기엔 찬 기운이 느껴지는 아침에 그렇다고 차려입지도 않은 의상에 자켓이나 트렌치코트를 걸치기엔 또 거추장스러워 팔짱을 끼고 한껏 몸을 움츠린채 집으로 돌아오곤 다. 언제부터인가 추위에 취약한 체질로 바뀌면서 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퇴근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과의 짧은 대화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첫 수영을 배우는 날. 물을 무서워하는 엄마는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걱정과 달리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물공포증때문에 아이들의 수영강습까지 망설였던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하나씩 이겨내면 되는 것을.

 

좋은 날이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아니 약속이나 한듯이 좋지 않은 날이 찾아오곤 한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올때도 되었겠지만 오지 않았으 더 좋았을 날들. 헤어나오려 애를 써 보아도 제자리 걸음인 것 같고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해답을 찾느라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 여러번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 마음들이 길을 잃은 듯 했다.


이맘때쯤의 우리들은 삼제의 직격탄을 맞은 듯 친구의 고민도 깊어져만 갔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민으로 생각이 많은 날들을 지내 왔다.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일로 서로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서로를 다독이며 현명하게 해결하려는 의지로 또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얼마전 종합소득세 신고서를 받았다. 작년 소득을 보고 있노라니 출근길 전쟁을 겪으며 고속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위해 일을 하러 렸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것이 어쩌면 헤어나올 수 없었던 문제의 해답을 조금 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외면했던 시간들에게 미안해진다. 이 또한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것을. 나에게 솔직했으면 되었고 그걸 인정했으면 되었을 일들이였던 것이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늘 반갑다. 수다의 건수를 잡을 수 있는 기회 아니던가. 지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도 고민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일도 우리에겐 큰 위안을 가져다 준다. 가지고 있는 고민에 비해 많이 발랄 우리이지만 그래도 걱정거리는 좋지 않기에 머리를 굴려보는 일로 최선을 다해본다. 쾌하지는 않아도 늘 명랑한 말투인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좋다. 산으로 기분전환을 하러 가는 지인에게 응원을 보는 일로 통화 마무리가 되었다.


연인과 이별하고 나서 듣는 모든 노래가 그랬던 것처럼 눈물쯤을 소환해내는 노래를 들어보겠다고 이어폰을 찾는 손이 바빠졌다. 가끔은 감정을 쏟아내야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의 수영수업에 참관했다가 퇴근하시는 강사님을 붙잡고 물이 무섭지만 아이들이 수업을 재밌어해서 수을 한번 배워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싶을때도 있다. 오늘따라 주차는 왜 이렇게 버벅거리는지 모르겠다.


지나갈 일들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는건 아닌지 결국 아무것도 아닐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나치게 생각이 많던 날때문에 수면시간이 줄어든걸 분명 후회거면서 떨쳐버릴 노력이나 하고 있는건지 게으른 세포를 탓해본다. 어느새 눈을 뜨면 어김없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 하늘이 밝아온다. 그렇게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오늘을 활기차게 살아보는 일이 숙제가 되어버렸다.


하루를 보내고 난 후 구름 가득한 하늘에 동그랗게 떠있는 달이 너무 예쁜 날이다. 종종 구름으로 가리워지긴 하지만 이내 모습을 드러내어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은 달님에게 간절함을 담아 소원을 빌어 본다. 들어 줄지 안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직 저녁엔 서늘한 기온이 감돌아 옷깃을 여민채 몸에 열을 내어 본다. 조금 더 걷다보면 바이러스들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절대 감기에게 면역력을 내어주진 않을테야'


모든 일들은 지나갈 것이다. 회상하며 웃을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또 한번 성장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순간들을 조금 즐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꽃길을 걷게 될 날들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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