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의지대로 말을 듣지 않는 걸로 봐서 분명히 조만간 비가 내릴 것 같다. 날씨예보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예보가 있다. 런닝머신위에서 헥헥거리며 정신못차리는 한 사람은 빨리 30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억지로 지나가는 순간들을 버텨본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도 시간은 더디게만 지나갈 뿐이다.
역시 런닝머신은 최악의 운동임에 틀림없다. 차라리 웨이트를 삼십분 더 하라고 하면 기꺼이 할 것 같다.
아무생각없이 나서길 잘했다 싶다. 비록 런닝머신에서의 30분이 정말 느리게 흐르긴 했지만 뛰고 나서 몸상태가 한결
나아졌기 때문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게 이렇게 꾸리꾸리한 날은 조금 도움이 된다. 아니였으면 아마 집을 나서지 못하고 그대로 피씨를 켰을지도 모를일이다.
밖으로 나가야만 에너지를 얻는 E성향이 반쯤 걸쳐있는 I에겐 집에 오랜시간 있는 일이 더 고역일 테니 말이다.
다시 탄력이 붙은 운동에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성실히 헬스장에 출석하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더불어 주인을 닮은 E성향이 있는 똥차를 주차장에 그대로 세워두지 않고 거의 매일 동행하는 일이 기분좋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주인에게 아주 조금은 고마워 하려나..
체력을 다져 놓았으니 이젠 그녀들을 케어할 시간들이 다가오는 긴장되는 순간들이 시작된다.
큰 아이의 1학년을 겪은 후 많은 걸 느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작은 아이의 1학년이 찾아왔는데 정신없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빛의 속도로 끝나는 수업시간이 야속하고 밥먹다 말고 일어서야 하는 날도 더러 있다. 교문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아이의 친구엄마와 마주쳤는데 작은 아이가 1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아이친구엄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세상 차분하고 우아해 보인다는 사람의 모습은 종종 우아하지 못하고 말이 급격히 많아지며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이나 울분(?) 또는 그냥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여과없이 뿜어져 나오곤 한다. 제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지만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는 인간은 그저 신났다. 물만난 고기처럼.. 아이 친구의 엄마가 당황하지 않도록 말수를 조절했어야 했는데 집에 오고 나서야 흥분해서 말이 많아진 수다쟁이의 모습을 조금 후회하기도 한다.
아이를 맞이하고 나서 깨달았다. 아이의 말수도 정말 많다는 것을.. 분명히 어른하고 대화중이였고 대화의 흐름도 잘 흘러가고 있었고 모처럼 입에 모터도 달았건만 아이가 등장하고 주도권은 아이의 것이 되었다. 아이의 말을 들어 주어야 하고 어른들의 대화에 시시때때로 끼여드는 녀석들이다. 오늘의 대화는 망한 것 같다. 급격히 체력이 소진되는 기분이란....
몇일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눈게 몇달만이다. 어떻게 그 몇달을 버틴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말 그대로 버틴게 맞다. 그래서 평소에 말이 없다가도 누군가를 만나면 급격히 말이 많아지는 일이 이젠 이상하지도 않다. 사람은 자고로 본인의 성향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나.. 자주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고 햇살의 비타민디를 나누어 받는 소박하지만 활기찬 일상들을 그려본다.
종종 수다스럽지만 결코 수다스럽지 않은 사람의 절규가 들리는 듯 하다. 오늘도 내 피씨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