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약간의 힘과 사랑만 있다면

by 바닷물


<청승 끝, 청춘 시작>을 업로드하고 어느덧 한 해가 지났다. 혹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내게 ‘그간 청춘을 잘 즐기셨나요’ 하고 묻는다면 이번에야말로 나는 기쁨 어린 목소리로 당신이 기대하는 답을 줄 수 있겠다. 그렇다고. 누구 못지않게 청춘을 만끽한 일 년이었다고.


다만 청춘을 누리는 방식은 기대했던 바와 차이가 있었다. 슬픔과 고통을 조용히 지나보내고 기쁨과 행복을 요란하게 즐기겠다 다짐했으나, 올해도 여지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던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으며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나날이 일 년의 대부분을 장악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자 의미가 나에게로 왔다. 여러 가지 색깔과 형태와 맛을 지닌 채로 내게.


2025년은 그렇게 수많은 고통과 함께 내게 몇 가지 성취를 안겨줬다. 겨울과 봄, 추위를 견디고 따뜻한 봄을 누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나는 여름이 되자 문득 체중을 조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즈음 내 마음에 불쑥 들어선 한 남자는 그 목표를 향한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1일 1식과 유산소를 병행하며 겨우내 늘어난 몸무게를 원상복구하기까지 대략 3-4주가 소요됐다. 근력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10년간 나와 함께해온 식이장애로부터 온전히 졸업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삶의 바이오리듬을 확보했다. 꼬리뼈 골절 이후 악화된 허리 통증 역시 하체 근력이 살아나자 서서히 그 자취를 감췄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몸을 통제하는 신체장악력을 조금씩 획득해갔다.


작년에 실패했던 졸업과 취업 분야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취가 있었다. 재수강한 두 과목에서 바라던 만큼은 아니지만 졸업에 무리가 없는 수준의 학점을 취득했다. 시험 기간이 실연의 고통 속에 허우적댄 시기와 겹쳤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통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멈추지 않고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아픔을 견디며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 그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 내겐 새롭고 신기했다.


취업에서도 역시 무난한 그러나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취가 나를 따라주었다. 연이은 불합격 소식으로 실망하던 나날을 지나 모교 소속의 3차 대학병원에서 내게 합격의 나팔을 불어준 것. 마침내 합격 소식을 마주하던 순간이 아직도 내 안에 선명하다. 그 후로 며칠간 얼떨떨한 마음과 취할 듯한 행복감이 나를 번갈아가며 찾아왔는데, 어제의 나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가 이제는 취업준비생이 아닌 ‘웨이팅 중인 신규간호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때때로 나를 인지부조화에 빠뜨리곤 했다.


이 모든 고통과 기쁨의 순간에 나와 함께해준 것은 오직 예술이었다. 나는 삶이 지칠 때면 책을 읽었고 마음이 복잡할 땐 글을 썼다.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한 날들을 견디기 위해 사랑하는 친구와의 대학로 약속을 기억하고 또 고대했으며 공연을 보고 난 뒤에는 그날의 행복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불러내어 함께 노닐었다. 덕분에 안개로 가득하던 그 밤거리가 조금은 덜 무서웠던 것 같다. 잠깐이나마 두려움을 잊게 해준 예술이 있었기에.


그렇게 2025년의 내 삶에는 어느덧 갈피가 하나둘 잡혀갔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믿는 힘도 조금씩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러한 자신감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준다는 내용은 아니다. 자신감은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불안을 멈추는 정서적 안정제 역할은 해줄 수 있지만 이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도 결국, 사랑이었다.


대체 사랑이란 뭘까. 내게 사랑이란, 나의 결점을 수용하고 또 타인의 결점을 기꺼이 수용하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결점을 알면서도 결국 그런 나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처럼, 타인의 결점이 보이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안아줄 수 있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게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 그런 것이었다. 사랑은.


나는 타인에게 수없이 많은 피해를 주고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다. 이 사실을 도대체 수용할 수가 없었던 때가 내가 나를 가장 미워하고 탓하던 바로 그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느 누구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며 남들과 아주 똑같은 사람임을 인정하자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매일 일상에서 마주하는 결함투성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내가 이러한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평생 피해준 일 없이 반듯하게만 자라왔다면 나는 지금처럼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온전한 자기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온전한 타인을 경험할 수 있으며 온전한 전체로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소설 <싯다르타>의 몇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온전한 자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의 단점을 외면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장점과 마찬가지로 그저 안아주는 것. 이렇듯 결함투성이인 나를 사랑하고 결함투성이인 사람들을 사랑하자, 어느새 삶이란 행복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고개만 돌려도 내가 사랑할 것들 천지인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으니까. 눈앞의 당신을 순수하게 좋아하게 되면서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내게 행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 소설 <아몬드>에서는 사랑이 곧 예쁨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의 결함을 찾기보다 그에게 존재하는 예쁨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매일 바라보는 세계가 예쁨으로 가득해지는 것. 예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행복하지 않기란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한편,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책에는 우리가 ‘우리의 말들이 물들인 세계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쁨으로 가득한 내 세계를 당신과 나누기 위해. 당신의 세계 역시 예쁨으로 물들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