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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시 Oct 16. 2024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울 엄마 권, 금, 자 여사님께서는 오늘도 영상 통화로 딸의 안부를 확인하신다.

 밥은 먹었냐고, 얼굴 낯빛이 왜 안좋냐고 애들 챙기면서 잘 먹으라고...

 낼 모레 50을 바라보는 딸이 막내딸이라는 이유에선지 아직도 나에게 걱정 반 사랑 반의 눈길을 보내주시며 안쓰러워 하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나에게 엄마 나이는 45살에 멈춰있다. 아니, 내나이가 올해 48인데... 엄마는 내 기억 속에 영원히 45살이시다니... 말도 안되는  억지지만.. 나에게 엄마는 늘 강단있고 단단한.. 어떤 환경에도 나약하지 않는 40대 강한  엄마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영상 통화 속 70대 노모의 모습이 울 엄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아직도  너무 생경하고 어색하다.


<엄마를 부탁해>는 내가 지금보다 한참 젊었을 때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읽어본 기억이 있다. 너무나 유명해 많은 사람들 손에 오르내려 닳대로 닳은 이 책을 나는 왜 다시 읽게 됐을까.

겨울 시금치는 보약이란다며 엄마는 시금치를 한푸대기 캐서 담아주신다. 항상 손수 씻고 다듬어 무쳐주기까지 하셔서.  흙이 덕지 덕지 붙은 시금치 다발을 보니 언제 다듬지라는 걱정과 함께 지금껏 엄마의 수고를 너무 푸대접하지 않았나하는 죄책감과 죄송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자연스레 엄마라는 두글자를 꼽씹으며 이 책의 첫장을 펼친다.


"매년 인자 고만해야겄다 힘에 부쳐서 못해묵겄다."라고 하시면서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는 밭으로 나가신다. 밭으로 향하는 엄마의 발걸음은어느때보다 신명 나신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를 여전히 고집하시며  손수 호미로 밭을 갈고 풀을 뽑고 씨를 뿌리시는 엄마.  그해 소작한 푸성귀며 곡물들을  자식들에게 보내는 낙으로 한해를 보내신다는 울 엄마는 소설 속 박소녀 할머니와 많이도 닮아 있었다.


초경도 하기 전 17살의 나이에 시집와 시부모님과 시누이를 모시고 한량 남편때문에 속상해 하면서도  자라는 아이들 밥 굶기지 않기 위해 하루 하루 버티며 살아온 어머니.... 죽을만큼 몸이 아프고 치매로 기억과 생각을 잃어가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 어머니... 자신은 딸이라고 배우지도 못해 글도 못 읽지만, 딸들에게 만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어머니...이런 어머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리는 걸로 소설은 시작된다.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와의 과거 추억들을 회상하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식들의 모습과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안타까운 시점이 교차하면서  끝내 엄마를 찾지 못하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엄마가 되어 다시 읽는 이 소설은 더 깊은 울림과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자식에게 이렇게 모든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우리 애들에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함께 든다. 그리고 나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옆에 계신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하여 3월 말 유채꽃이 만발한 어느날 엄마와 떠나는 제주 여행이 마냥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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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땔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따 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움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p36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빡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빡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p40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p68


언제가 아내가 논 세마지를 자기 명의로 해달라고 한 때가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인생이 허망해서 그런다고 했다. 자식들이 다ㅏ 제 갈길을 가고 나니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p143


딸의 울음 소리가 점저 더 커졌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수화기 줄을 타고 딸의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당신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딸은 기억할 것이다. 아내가 이 세상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p 198


당신 이름은 이은규요, 의사가 다시 이름을 물으면 박소녀라 말고 이은규라고 말해요.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p236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발등을 들여다 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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