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이상한 슈퍼히어로 랜딩

제임스 건의《슈퍼맨》(2025) 인트로를 보며

by 돈끼호떡

북극에 떨어진 자

슈퍼맨이 북극에 떨어지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아는 슈퍼맨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다. 처음 만난 슈퍼맨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이었다. 여러 명이 달려들어도 굴하지 않고, 조드 장군을 물리치는 장면은 그야말로 ‘슈퍼’였다. 그랬던 영웅이 어쩌다 추락했을까.


북극은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다. 클락 켄트는 그곳에서 친아버지 조엘과 만나 슈퍼맨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희망을 상징하는 ‘S’ 슈트는 여기서 처음 등장하며, 주먹을 쥐고 하늘을 날아가는 슈퍼맨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완전무결한 슈퍼맨이 이번 영화에서는 다르게 등장한다. 여기에는 신화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제임스 건의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감독은 슈퍼맨이 지구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설명으로 생략한다.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한 번은 패배했음을 관객에게 전한다. 그리고 북극 한가운데로 그를 떨어뜨린다. 신화를 비트는 이러한 시도는 친부모의 메시지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메시지는 지구와의 공존을 바랐던 《맨 오브 스틸》의 조엘과 달랐다. 지구인과 접촉한 적이 없는, 크립톤 행성의 대표자로서 그들이 무엇을 남겼는지는 본편으로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영웅은 죽지 않아요

감독은 슈퍼맨을 다시 호출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슈퍼맨》(2025)의 도입부를 다시 정리해 보자. 상처를 입은 남자가 설원에 떨어진다. 그는 휘파람으로 슈퍼독 크립토를 부른다. 크립토가 그를 기지로 끌고 간다. 그는 햇빛을 받으며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슈퍼맨으로 부활한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이 과정을 하나씩 풀어보자.


고통은 현실을 깨닫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기에 그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걸까?’ 그는 슈퍼맨이 분명했다. 가슴팍에는 대문자 ‘S’가 새겨져 있고 등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병원도 없는 북극에서 말이다.


현실이 선명해질수록 슈퍼맨의 위상은 더욱 초라해진다. 이 순간,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상영관을 뒤덮을 만큼 울려 퍼진 소리는 쓰러진 남자가 여전히 ‘크립토니안’ 임을, 적어도 지구인과는 다른 존재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소리를 들은 크립토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망토를 두르고 설원을 달리는 이 귀여운 생물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가 확실했다. 크립토의 등장은 슈퍼맨의 현실적 고난을 소란스럽고 만화적으로 지워버린다. 그리고 마치 나의 기대를 대변하듯 짖는다. ‘일어나! 슈퍼맨이라면 일어나야지!’ 그러자 그는 자신의 망토를 크립토에게 물리며 기지까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당신은 다음 장면에서 바닥에 질질 끌리는 슈퍼맨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장면을 단지 ‘슈퍼맨’이 아니라, 슈퍼맨 역할을 수행하는 클락 켄트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영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도 그는 일어나야만 했다. 2시간 동안 그가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미안하지만, 나는 피투성이 남자가 아니라 '슈퍼맨'을 보고 싶었다. 남자는 마지못해 슈퍼맨을 상징하는 망토에 의지하며 구원을 받는다. (실제로 크립토가 그를 끌고 갈 방법은 망토를 무는 수밖에 없었겠지만.)


눈부신 감옥

빙하 위로 솟아오른 얼음 기지와 ‘S’가 새겨진 출입문, 그리고 신기한 로봇들까지. 그야말로 만화적 공간에 들어선 슈퍼맨은 태양빛으로 상처를 치료한다. 그런데 빛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은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햇빛만 있으면 상처가 치료되니 이보다 싸고 편리한 방법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 수혜자가 슈퍼맨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참으라고 말할 수 없다.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다. 슈퍼맨은 어떤가. 그는 의사가 필요 없다. 치료를 받겠다는 본인의 의사(意思)도. 살갗이 빛에너지에 노출되면 모든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절대 선을 추구하는 슈퍼맨이 심적으로 힘들다며 히어로 활동을 관둘 수도 없다. 즉, 빛이 있는 곳에서 슈퍼맨은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가 날아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본다. 스크린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면, 그를 비추는 건 빛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히어로들은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왜 아직도 슈퍼맨을 부르고 있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북극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슈퍼맨이 왔다

어찌 되었건 슈퍼맨은 날아오르고 영화는 시작된다. 제임스 건 감독은 슈퍼맨의 신화를 버리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 새로운 슈트를 입혀 다시 무대에 올릴 뿐이다. 북극에 떨어진 남자가 오늘날 어떠한 슈퍼맨으로 날아갈지는 저마다의 빛으로 관람하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