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을 방황하는 모든 서퍼에게

조셉 코신스키의 《F1 더 무비》(2025) 인트로를 보며

by 돈끼호떡

1. 도로를 적시는 파도


《F1 더 무비》는 자동차 경주를 다룬다. 그런데 막상 도입부에 들어가면, 파도 소리가 들리며 해안이 나타난다. 파도는 곧 엔진음으로 덮이고, 머신이 질주하던 장면은 툭 끊겨버린다. 빗길 운전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감독은 왜 젖어선 안 될 서킷에 파도를 끌어들였을까.


이 의문은 소니 헤이스가 데이토나 24시에 참가하는 내내 커진다. 헤드셋에는 열대과일이 스티커로 붙어 있다. 그는 순위를 뒤집고자 경사진 트랙 바깥으로 달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파도를 가르는 서퍼와 같다. 폭죽이 터진 뒤 떨어지는 불씨는 야자수 장면과 맞물려 다시 해변의 환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감독이 파도를 가져온 이유를 이해하려면, 잠시 레이싱 영화의 한계를 짚어야 한다. 머신으로 순위를 겨룬다는 점에서 소니는 필연적으로 운전석에 앉는다. 그래서 우리가 주로 보게 될 소니란 헬멧에 가려진 얼굴과 바쁘게 움직이는 두 손이 전부다. 이렇게 제한된 시점마저 도로라는 축에 매여 있다. 따라서 레이싱 영화는 역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왜 파도인가? 감독은 파도의 이미지를 빌려 레이싱의 평면적 구도를 입체화한다. 일단 파도란 무엇인지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 요소를 영화 곳곳에 덧입힌다. 도로에 바닷물을 직접 쏟을 수는 없지만, 파도의 느낌을 가져오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엔진음은 파도처럼 뒤엉키고, 머신은 포말과 같이 선두에 서서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파도는 단지 도로를 적시는 데 끝나지 않는다.


2. 서킷을 유랑하는 남자


파도가 있는 곳에 서퍼가 나타나듯, 소니의 하루도 서퍼의 일상처럼 흐른다. 드라이버 교체 소식에 몸을 풀고, 인파 속으로 스며들어 경기를 준비한다. 우승 후에는 차에 올라 지도를 확인하고, 코인 세탁소에서 빨래를 돌린 뒤 샤워도 한다. 마지막은 지중해풍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소니는 왜 루벤의 제안에 망설였을까? 그는 데이토나 팀과의 계약 대신 보너스를 요구한다. 레이싱이 단지 생계 수단이라면, 그 팀에 합류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게 나았을 것이다. 추구하는 게 명예였다면, 적어도 한 번은 트로피를 만져보지 않을까. 하지만 소니는 축포가 터지든 말든 떠날 준비를 한다. 이런 사람이 이번에는 시간을 끌면서 점원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소니의 상태에서 그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일단 벤(van)부터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차고는 땅 위로 부유하며 바퀴는 언제든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바쁘게 움직일 것 같지만, 사실은 차에 갇혀 있다. 벤에서 경주용 차량으로, 또 벤으로 오르는 반복의 구조는 목적 없이 맴도는 머신처럼 유랑하는 소니를 보여준다. 이러한 굴레는 코인 세탁소, 핀볼, 카드 뽑기로도 나타난다.


코인 세탁소만큼 지루한 공간이 있을까. 빨래는 통 안에서 열심히 구르지만, 결코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감독은 이 공간의 한복판에 소니를 배치함으로써 자그마한 굴레를 확장한다. 몇 번이고 서킷을 맴도는 머신과 일일 드라이버라는 소니의 삶으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시즌 단위로 운영되는 F1과 달리 핀볼은 적은 돈으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둘 다 게임이라는 점에서 핀볼은 축소된 경기라 말할 수 있는데, 어쩌면 그는 F1에 대한 뉴-게임을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카드 뽑기도 일종의 루틴으로 보인다. 그는 숫자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자신을 ‘그 전’과 ‘그 후’로 분리한다. 경기마다 만들어지는 이 관계는 일시적인 기대이자 원동력으로서 소니를 움직인다.


모든 굴레를 종합하면, 소니는 폐쇄된 루틴애서 헤맨다는 걸 알게 된다. 이때 등장한 루벤은 F1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끌고 와 그에게 선택지를 부과한다. 서킷을 배회하며 자신을 위로할지, 아니면 굴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지를.


3. 방황하는 모든 서퍼에게


영화는 2시간이 넘도록 달린다. 그러면 어느샌가 ‘왜 달리는가?’라는 물음이 타이어 자국처럼 남는다. 빨래는 찌든 때를 벗기려 제자리를 맴돌고, 머신은 1등을 차지하려 서킷을 달린다. 데이토나로 본 소니는 돈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왜 루벤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자동차는 액셀을 밟아야 앞으로 나가지 않던가. 그러니 소니가 아직 데이토나를 달리기 전, 잠에서 깨어난 순간을 되돌아본다. 탁상에는 카드와 시계뿐 아니라 액자도 있었다. 거기에는 어린 소니와 아버지가 담겨 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 중후반에 명확해진다.


소니는 아버지로부터 도박을 배웠고, 아버지는 그가 F1을 달릴 때 베팅을 했다. 이 사실로 추리해 보면, 소니의 카드 뽑기는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해 스스로 배팅하는 의식에 가깝다. 경기마다 관계를 재현하면서, 아버지와의 뉴-게임을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가속을 멈추지 않는다. 나 또한 영화를 따라가기에 벅차서 소니가 왜 1등에 집착하는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차 싶어 걸음을 멈춰도 소니가 아버지와 만날 수 없듯이,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뒤로 달리는 레이싱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F1 더 무비》는 소니가 서킷을 벗어나며 완성된다. 감독이 설계한 파도는 샴페인이 터짐과 동시에 소니가 극복해야 할 대상에서 청량한 바다로 흩어진다. 모든 게 잠잠해질 때쯤 나는 생각한다.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달리고 있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쳐버린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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