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제나 하나!
초등학생 시절 저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댁에서 머물곤 했어요. 세상살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꼬마 시절의 저는 밥 먹고, 게임하고, 만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곤 했던 팔자 좋은 친구였습니다. 고민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 다이어트라는 게 뭔지 몰라 밥 한 공기는 어른 못지않게 뚝딱 먹어치우던 시절.
방학숙제로 하던 일기는 일주일치를 몰아 쓰다, 며칠은 '맑음'으로 표시하고 하루 정도는 대충 '흐림'이라고 표시하던 시절. 무뚝뚝하고 남 일에 관심 없이 시크했던 저를 살갑게 돌봐주신 할머니가 계셨기에 저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여름 방학이었어요.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난 밤에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할머니와 대나무 자리를 깔고 모기장을 치고 누워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피곤함에 눈을 감고 계셨지만, 호기심 많던 저는 캄캄한 하늘을 주시하는데 여념이 없었죠.
"할머니 저것 봐, 저거는 움직이니까 비행기 아니면 인공위성이야"
"그런 것두 보이냐, 눈도 좋네"
"가만히 있다 보면 어떤 게 움직이고 어떤 게 안 움직이는지 보여"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자리를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밤하늘엔 별과 별 아닌 것들이 섞여 저마다 빛을 내고 있었죠. 세상이 바삐 흘러가는 와중에 나와 할머니만은 시골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움직이는 것들은 저마다 속도를 내고 있었지만, 저는 속도를 낼 필요가 없었어요. 방향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가만히 모든 것을 응시하며 키워낸 저만의 감수성은 이후 제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학원 뺑뺑이를 돌거나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며 방학을 보냈었다면 어땠을까요?
어른이 되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언제나 유년 시절의 행복함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는데, 꺼내볼 추억이 없는 어른이라면 왠지 서글펐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저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은 많았지만 오늘은 코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늘 제가 좋아하는 떡갈비, 치킨너겟, 케첩과 마요네즈를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 등을 식탁 위에 하나씩 올리곤 하셨어요. 그렇게 밥을 먹다가 노을이 조금씩 지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코난을 틀었습니다.
코난은 원래 고등학생이던 '남도일'이 검은 조직의 조직원들에 의해 이상한 약물을 먹고 어린아이로 작아졌다는 설정입니다. 모든 기억을 갖고 어려졌으니 거의 사기급 회춘이지만, 코난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체를 밝히지도 못하고 꼬마 취급을 받게 되니 답답한 상황입니다.
코난은 마취총을 쏴서 '유명한' 탐정을 잠들게 한 뒤, 빨간 리본 넥타이 모양의 음성변조기로 추리를 펼쳐나갑니다. 만화를 보면서 추리를 열심히 하려고 해 봤지만, 아쉽게도 만화에서는 증거 장면들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편입니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코난 혼자서 감을 잡고 추리를 해나갈 때가 많죠.
대부분은 인상이 좋으면서 이야기에서 지분이 거의 없어 보였던 조연들이 범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코난 덕후들은 관상만 보고도 범인을 거의 파악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하네요.
코난이 재밌었던 이유는 추리라는 소재의 흥미진진함도 있었지만, 당시 저와 비슷한 또래로 등장하는 코난이 당찬 기세로 수사에 개입해 나가는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홀렸기 때문이었어요.
어린아이 상태인 불리함을 200% 활용하고 작은 증거 하나도 침착하게 살펴보다, 최종적으로는 전체를 꿰뚫는 완벽한 추리를 펼친다라. 게다가 검은 조직에 의해 똑같이 몸이 작아진 '장미'라는 캐릭터와 시크한 말투로 대화를 주고받는 어른 같은 모습과 언제나 주변인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비범한 기세가 매력 포인트였죠.
'진실은 언제나 하나!'를 외치는 코난의 눈빛에서 결의가 느껴졌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점선으로 얽혀있는 와중에 꼭 선명한 실선을 찾아내 연결하고야 말겠다는 군더더기 없는 다짐.
알 수 없는 트릭들과 '저게 가능해?'가 난무한 사건 현장이었지만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주인공이 어린아이였고, 중간중간에 개그요소가 섞여있었으며 미란이와의 닿을 듯 닿지 않던 사랑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코난의 오프닝/엔딩곡이 정말 명곡이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시작하고 끝날 때 나오는 음악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코난 OST를 듣다가 깜짝 놀랐지 뭡니까. 마치 어느 날 어른이 되어 이 노래를 다시 들어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가사가 심오하며 깊었어요.
<바람의 라라라>
빛나는 계절에
도착한 미래에
방황하지 않고
내 눈빛을 바람의 라라라
넘쳐 버릴 듯한 불안에
눈물을 감춘 어제에
그때가 다시 온다면
난 말할게 바람의 라라라
이 가사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 봤어요.
누구나 어른이라는 '도착한 미래'에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슬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나는 약하지만,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난 강해질 수 있어 -라는 느낌이 들었던 노래였어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스페이스 오디 티에 비유해 볼게요. 스페이스 오디티는 원래 파랗지만 레몬즙을 살짝 짜 넣으면 분홍빛으로 변하게 됩니다. 마치 그것처럼 슬픔이 슬며시 희망으로 변하는 기분이 들어요. 누구나 방황할 수는 있지만, 넌 혼자가 아니야 - 라는 느낌을 받고 싶을 때 이 노래를 추천합니다.
<Hello, Mr. My yesterday>
Hello, Mr. My yesterday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나에게로 부디 내 얘길 전해줘
꿈을 놓아버린 그대여, 시간이 흘러서
나였었던 그대는 진정 웃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줄곧 이 길을 달렸어
너와 함께한 1분 1초 모든 흔적이
내 삶의 증거야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지금 꿈을 이루고 싶다 외치는 나 (Mr. My yesterday)와 현재의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나태하게 공부할 때마다 미래의 나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꿈을 놓아버린 현재의 나로 인해 미래의 내가 슬퍼질 수 있으니까요. 지금 나태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노래입니다!
코난 하면 또 셜록 홈즈를 빼먹을 수가 없죠.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가면 가끔씩 코난이 생각나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틈틈이 읽곤 했습니다. 직접 정한 쉬는 시간마다 한 에피소드씩 읽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도 했어요.
사실 책을 읽을 때, 추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추리는 주인공이 다 할 테니까요. 저는 그저 주인공의 멋진 모습을 감상하는 데에 중심을 뒀습니다. 또, 셜록 홈즈 시리즈에 묘사된 단풍나무, 떡갈나무길 등을 상상하는 게 재밌었어요.
셜록 홈즈 하면 떠오르는 담배 파이프와 살짝 예민한 모습, 인사를 건네는 듯하면서 상대를 세밀히 파악하는 눈썰미, 쓸쓸한 낙엽이 등장하는 가을 그리고 스산한 분위기 같은 요소들이 책을 펼칠 때마다 제게 마치, 과거의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When you have eliminated the impossible, whatever remains, however improbable, must be the truth.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다.)
현재의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올바른지 아는 것이다.
결말에 다다라서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는 상황이 오면, 저는 앞페이지를 다시 넘겨 증거 부분을 되짚어 보기도 했어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고, 등장인물 모두를 기억하기 힘들어 파악해 보다 관두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유로운 모습의 탐정이 미스터리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다 끝내 해결하는 모습엔 언제나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에피소드를 뚝딱 읽고 나면 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죠. 그렇게 소설책을 옆으로 밀어두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마침 도서관에도 가을이 찾아와 창밖은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며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곤 했던 시간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스노볼 안을 들여다보듯 그때의 저를 다시 회상하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재밌었어요. 어릴 적 만화 '명탐정코난'을 보면서 탐정과 추리에 대해 재미를 느낀 것이 계기가 되어, 다양한 추리 소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 장마가 시작되던 때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집에서 읽었어요.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궂은 날씨를 뒤로 하고 방구석에 벌렁 누워, 책과 함께 기차여행을 떠났죠.
추리 소설의 묘미는 평범한 상황에 공포라는 압력을 불어넣어, 모든 캐릭터들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탐문 수사 과정에서 인물들의 사소한 점을 좀 더 확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티브이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생존'이라는 목표 때문에 그 공간에 압력이 높아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가치관, 성격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죠. 그것과 같은 흥미를 오래 씹고 뜯고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 추리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또 추리 소설이 읽고 싶네요. 오늘 코난 한 편 때리고, 셜록도 정주행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