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어른은 아니었으니까

Welcome, 어른이들

by 진주

어린 시절, 저는 친구와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 와서 혼자 글을 쓰거나 티비보는 것을 좋아어요.


당시 자주 보던 만화 채널은 양대산맥이었던 '카툰네트워크'와 '투니버스' 였죠.


카툰 네트워크


카툰네트워크는 단연 만화계의 노다지였어요.

(사랑해요 카툰네트워크)


저는 만화를 볼때 스토리만 보지 않습니다. 그림체가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로 만화에 대한 만족도가 확 올라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든 만화를 보든, 주인공만큼이나 주인공의 뒷배경에도 관심을 가지는 편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카툰네트워크는 "완전히" 저의 취향저격이었요.


둥글게 생긴 그림체, 각진 그림체, 뭔가를 많이 생략한 그림체 등... 다양한 그림체가 개성있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일단 그림만 봐도 재밌을 것 같다는 기분?...


솔직히 최근에 나온 로보카폴리, 캐치티니핑은 제 스타일이 아니예요. 너무... 인위적이랄까. 정이 안 가요. 뽀로로까진 봐줄만했는데.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창작자분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아이들이 진짜 만화의 기쁨을 잘 모른채 유튜브라는 더 자극적이고 빠른 매체에 먼저 익숙해져버린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어요.


당시엔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해서 머리가 나빠진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스마트폰이 오히려 이름만 '스마트'폰일뿐 어린아이들의 사고력과 참을성을 더 떨어뜨리는 것 같니다.


티비는 오히려 나은 편입니다. 참을성있게 편성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빨리감기도 불가하며 끝나는 시간도 정해져있니까요.


티비말고는 재밌는게 딱히 없었던 시절. 컴퓨터 게임도 왠지 낯설었던 시절. 만화는 저에게 낭만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 세대들은 알지 못하는 만화 전성시대 속에서 고퀄리티의 만화를 많이 접할 수 있었 건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연스레 만화와 관련된 추억이 소복소복 쌓여갔습니다.


출처: 인터넷


밥 먹고 게임하고 눕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하교 후 빵집에 들어가서 500원 하던 크로켓과 300원 짜리 '피크닉'주스 한 팩을 산 뒤 집으로 돌아곤 했습니다.


낮 시간대의 동네 고요했고 평화로웠어요. 른이 사라진 골목에서 대장은 어린이입니다. 하굣길에 문방구에서 얼음과자를 사거나 '차카니'와 뼈다귀모양 사탕을 사서 주머니에 푹 찔러넣은 채, 과수원을 지나갔어요.


때로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단짝친구와 만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연극을 하기도 했어요. 을 잃은 것 같은 강아지가 골목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걸 보는 날엔 내가 주인이기라도 한 양 강아지를 따라다니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의 혼자서 조그마한 점처럼 대로변을 가로질러 집으로 곧장 향는 편이었습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일은 가방을 던져놓고 이불을 두툼하게 접어 올린 뒤, 그 위에 푹신하게 앉아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르는 것이었어요.


사온 간식을 앞에 펼쳐두고 만화를 보고 있으면 세상 남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만의 지상낙원이었어요.


클래식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톰과제리

하루의 마무리로 아따맘마

낯선 미국 문화에 당황스러워지는 심슨

범인 나올 때 눈 가리면서 보던 코난

초능력에 눈이 휘둥그레 했던 파워퍼프걸

각종 스티커까지 사모았던 슈가슈가룬

나에게도 수호천사가 생겼으면 했던 캐릭캐릭체인지

응원하게되는 겁쟁이 강아지 커리지



멋진 내 친구들


만화에 대한 발길이 뜸해진 건 대학생 때부터였어요. 인생의 테마가 새롭게 시작되면서 제가 사랑했던 만화 주인공들은 <인사이드아웃> 영화에서 나오는 '기억의 저편'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듯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 만화는 지치지도 않고 다시 소환됐어요.


위로받고 싶을 때 아따맘마를 봤고, 공부에 집중하려고 슈가슈가룬의 음악을 들었죠. 시험 치러 가기 전에 질풍가도 OST를 들었고,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나는 지금 포켓몬스터 주인공이고 관장을 잡으러 간다' 생각하며 미션처럼 일을 수행해 나갔니다. 회사생활이 지칠 때 속으로 원피스 주제가를 불렀 잠들기 싫은 밤엔 코렐라인과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봤요.


만화 보기는 그저 시간 낭비가 아니었어요.

어른이 된 후에 만화를 두 탕 삼탕 재탕할수록 그들이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용기, 감동, 사랑이 느껴졌으니까요.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동심을 잃지 않은 세상 모든 어른이들에게, 저의 추억에 함께 공감하며 각자의 추억 또한 꺼내보길 바라면서. 브런치북, 시작합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