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를 샀다. 사실 평소 일확천금의 꿈은 아예 없는 편이다. 내가 당첨이 될 거란 희망 자체가 없다. 그리고 매달 소소한 월급을 받는 일개미일 뿐이지만, 이런 잔잔한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라 돈에 대한 굶주림이 별로 없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좋은 꿈을 꾼 것 같으면 로또를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이 그랬다.
자고 일어나서 꿈 내용이 생각나면 씻는 것도 뒤로 하고 꿈해몽을 먼저 찾아보는 편이다. 그날 아침, 눈을 떴는데 내용이 생생했다. 바로 구글에 검색을 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퇴근하며 로또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로또를 사러 가는 것 자체가 번거로워서 그냥 가지 말까- 했지만, 나의 게으름 때문에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싶어 부랴부랴 로또 판매점에 갔다.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플래카드가 붙여져 있고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 분들은 매일 여기에 오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로또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도 모르는 초짜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로또를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아저씨한테 현금 5천 원을 주고 '자동'으로 달라고 하면 기계가 뽑아준 랜덤숫자를 5개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딱 5천 원을 미래에 투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5천 원을 버린 셈인지 투자인지는 토요일이 되면 알겠지.
예전에 스피또란 걸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스피또는 꽝, 당첨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빠르다는 의미의 복권인데, 동전으로 긁어서 바로 결과를 볼 수 있다. 5천 원 치의 스피또를 사서 동전으로 긁는데 다행히 5천 원에 당첨이 되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돈 잃는 전형적인 유형의 인간처럼, 나는 당첨금을 다시 스피또를 사는 데에 투자했고 결국 모두 꽝이었다. 후후... 뭘 기대한 걸까. 이렇게 바보 같은 나 제법 우스워.
이번에도 로또는 꽝이었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데 전혀 쉽지 않은 숫자 맞추기. 대국민이 숫자 맞추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될 놈만 되는 세상. 어차피 큰 미련이 없었기에 타격은 없었으나 당첨 숫자가 하나도 안 나온 것이 맞는지 눈 씻고 찾아보긴 했다. 정말 하나도 없더라. 이것도 나름의 럭... 키 아닌가?
뭐 어쨌든, 그렇게 인생 역전을 노려봤으나 인생은 여전이었다. 며칠간 당첨이 된다면 뭘 할지 생각해 봤는데 마당 있는 집을 산다, 꽃밭을 키운다, 돈은 적당히 벌되 워라밸을 지킨다, 건강하게 산다, 세계여행을 간다... 등이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이미 난 그 꿈을 이뤘을 때의 나만큼이나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진 못했지만, 행복이 소유의 크기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이미 난 행운아야. 많은 걸 가졌으니까. 더 바라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언젠가 마당 있는 집은 내 손으로 일궈낸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망한 로또복권을 찢어버렸다. 당첨되는 사람은 부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더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오래된 생각을 바꾸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뀐다.
-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