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 <대나무숲 살인사건> 리뷰
by. 임소월
최근 웹드라마의 트렌드는 로맨스와 코미디가 주름잡고 있다. 비슷한 장르가 범람하는 웹드라마 계에서 <대나무숲 살인사건>은 쉽게 다루지 않는 소재와 장르를 시도하고 있다. <대나무숲 살인사건>은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쉽사리 관심을 주거나 생각해 볼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에게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전달한다.
2018년 1월 29일, 현직 검사 서지현에 의해 한국의 ‘미투 운동(#MeToo)’이 시작되었고 이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성폭력 실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은 현재 진행형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오히려 그 반작용으로 2차 가해가 증가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나무숲 살인사건>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든 작품이다.
공대 대학원 조교로 근무했던 김서연은 자살하기 전, SNS상의 대나무숲에 자신이 당한 일을 올리게 된다. 신망이 두터운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글. 이 글은 일파만파 퍼져 서연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녀를 교수에게 소개해 줬던 정욱, 위험에 처한 서연의 상태를 모른 척했던 규원, 그녀를 꽃뱀으로 만들었던 성규, 그리고 성폭행 가해자 교수 상헌까지. 그들 중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이고 어떤 이들은 감추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며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마냥 감추고 덮어두려고 하는 것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자극적인 것에 쉽게 반응하며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 포스팅한 ‘공대 꽃뱀 영상’은 빠르게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악플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한 당사자는 어느새 ‘꽃뱀’이 되어 2차 가해를 당하며 난도질 되고 만다.
관객은 서연의 죽음이라는 사건의 결과를 먼저 접하고 역순으로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시선이나 감정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서연을 둘러싼 캐릭터들의 각 관점에서 사건을 마주하는 각자의 태도와 욕망을 보여준다. 총 7화로 이루어진 <대나무숲 살인사건>은 편마다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을 풀어가면서 주인공을 둘러싼 참담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특히 플래시백의 효과적인 사용은 관객을 사건과 인물에 집중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등장인물들은 취업과 생존의 무한 경쟁 속에서 대학원 졸업과 논문을 핑계로 “참으면 괜찮다”, “내 일이 아니니까”라며 피해자를 외면한다.
우리는 각박한 현실을 핑계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는 우리에게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겪는 고통의 대가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행복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른 욕망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대나무숲 살인사건>은 서연의 죽음을 두고 다양한 군상들의 욕망과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라면 어떤 태도를 갖게 될까? 누군가에게는 내가 윤정욱일 수 있고, 한성규일 수 있으며 모규원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며, 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대나무숲 살인사건> 일곱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