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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y 07. 2021

터닝 포인트에서, '한번 해볼까?'

배우 이주영 - 단편영화 <마리아들>  / 배채윤 감독


이주영은 이제 서른이 다되어가는 배우다.
배우나이를 들먹이는 건 시답잖은 일 같긴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서른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우에게는 ‘더’ 그렇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폭이 무척 넓어지는,
그런 시기에 이주영은 ‘지금’ 있다.




그녀는 대학교를 체육과로 입학했고, 별 생각 없이 대학로의 연극을 보면서
충동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학년이 되면서 연기과로 전과를 한다.
그녀가 살아온 모습을 보면, 그녀는 늘 ‘한번 해볼까?’하고 해본다.
즉흥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거부감 없이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건 달리 말하면,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녀는 연기자로서 대단한 무기를 가진 셈이다.


이주영은 한 영화제에서 만난 장률감독과의 인연으로, <춘몽>(2016)에 출연한다.
이 영화는 다음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이주영은 갑작스럽게 레드카펫을 밟게 된다.
MBC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다.


<마리아들>(2017)에서 이주영은 대리출석과 대리시험을 통해서 살아가는 가짜학생
마리아역할을 한다. 그런 부정적인 삶속에서도 그녀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인물로 표현된다.
심지어 그녀는 아픈 엄마를 위해 돈을 부쳐주기까지 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는 죄를 지으며 마리아처럼 살아간다.
엄마와의 통화에서 그녀는 단호하게 자신의 신념을 말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난 지금이 좋아.”



그녀의 상대역인 대학생 상미가 학점과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한다면,
마리아는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한다. 어쩌면 이주영에게 딱 맞는 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학점이 자신의 요구보다 혹은 계약조건보다 낮게 나온 걸 항의하는 상미에게
사실상 공범인 마리아는 당당하게 말한다.


“당장 입금하고, 남은 시험 출석 내가 해. 내 영역이야. 건들지 마.”




놀라운 장면이다. 의뢰인의 항의를 받으면서, 오히려 의뢰인을 협박하는.
적반하장? 그런가? 아니다. 최소한 아니게 보이도록 그녀는 연기를 한다.
그런 모습이 이주영의 연기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 느껴질까? 그녀가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지켜야할 이유가 확실하면, 신념도 강해진다. 그것이 설령 잘못된 일이라 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그녀는 무척이나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관객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다는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장면에서 마리아와 상미는 해저물녘 옥상난간에 기대서서,
자신들을 그 상황으로 내몬 비정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본다.
전 과목 낙제에 취업도 못할 거라고 절망적으로 말하는 상미에게
마리아인 이주영은 말한다.


“어디든 되겠지. 넌 너무 불쌍해. 이 시간이 한번뿐이라는 걸 넌 왜 몰라?
난 공부가 좋아. 이게 내 길이야.”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워딩이 참으로 이주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영은 학교공부보다는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선뜻 이해가 됐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의 깊이를 가장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독서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주영의 생각은 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깊이가 연기의 깊이를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다.


얼마 후 서른이 될 배우 이주영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훨씬 더 폭 넓은
역할을 연기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이주영을 연기할 것이다.
그녀는 또 ‘한번 해볼까?’ 하고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이주영이니까.


‘현재’를 전력질주하고 있는 그녀는 설령 그 길이 꽃길이 아니더라도,
흔쾌히 그 길을 갈 것 같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그녀의 역할을 하면서 행복할 것 같다.
이주영은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남상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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