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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03. 2023

이중 멍에를 진 엄마와
철이 들어버린 아들의 사랑

영화 <섶> - 허진석 감독


엄마 민정과 아들 이준은 단둘이 살아간다. 스스로 침구류를 개고 출근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엄마를 위해 식빵을 구워주고 딸기잼까지 챙겨주는 아들의 행동은 그가 일찍 철이 들어버렸음을 암시한다. 이후의 대사에서도 나타나는 아들의 면모는 여느 또래들보다 성숙하다. 성숙함, 그것은 ‘어른됨’의 표시이지만 빨리 찾아오는 성숙은 대개 결핍의 징표다. 작중 아들의 결핍은 시간이다. 엄마와 오순도순 보낼 시간의 부재. 그 부재가 아들을 너무 빨리 성장시켜버렸다.


키보드를 연신 두들기며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엄마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손님을 데리고 온 사람은 박대리. 그런데 그 손님은 알고 보니 거래처 직원이 아니라 아들 이준이었다. 알고 보니 방학 숙제로 엄마를 그려야 한다며 찾아온 것. 갑작스레 찾아온 아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는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엄마는,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준은 엄마가 처한 적나라한 현실도 마주쳐버린다. 상사에게 ‘깨지고’, 부하 직원들에게 동정과 놀림의 대상이 되며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엄마의 상황은 아무리 철든 아이라 할지라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없다. 집에서 엄마는 ‘나의 전부’지만, 집 밖, 그러니까 사회에서 엄마는 벽 속의 벽돌, 엑셀 속의 숫자 정도에 불과하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력을 팔고, 자발적으로 억압의 순환고리에 들어간 보통의 사람.



평소 같았으면 힘든 엄마를 보며 함구했을 이준이지만, 오늘만큼은 평범한 아이처럼 굴어댄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생일. 방학 숙제는 핑계고, 사실 이준은 생일을 맞이한 자신을 위해 엄마가 미역국이라도 끓여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들이 벌인 무언의 시위에 타박을 했던 엄마는 그 말을 듣자 숙연해진다. 서러운 아들은 코를 훌쩍거리며 홀로 집에 가고, 잠이 들었다가 깬다. 아들의 시야엔 주방에서 뭔가를 조리하는 민정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엄마는 아들이 잠든 사이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생크림 케이크와 생일 초도 샀다. 이준이 그림 속에서 소망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갈라진 마음은 엄마의 이벤트로 봉합된다. 이준과 민정은 생일 파티를 했고, 이준의 재치 있는 대사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근데 엄마, 나 생크림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하는데.”


‘가족’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원초적인 사랑의 장소일 수도 있고, 부모의 훈육을 통해 자식의 인격을 형성하는 기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체제의 운동 법칙에서, 그것은 노동력 재생산의 기지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노동자로 거듭나기 위해 아빠는 공장에 나가고 엄마는 아이들을 돌본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화된 핵가족 제도다. 그런데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없는 가정에서는, 한 명의 엄마 혹은 아빠가 생산(노동)과 재생산(가사노동)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진다. 영화는 (노동력)재생산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그것을 충분히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이자 엄마인 여성이 겪는 고충을 아들과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무겁지 않게 드러내고 있다. 이준과 민정의 ‘행복한 생일 파티’는, 육아가 개별 가정에 국한된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서부터 가능해질 것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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