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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10. 2023

가까운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오늘

영화 <내일의 시간> - 이재일 감독

단편영화 <내일의 시간>은 시준의 아버지 장례식장이 끝난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준의 아버지 영정 사진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의 남편이 죽었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시준의 엄마를 욕하는 고모들의 음성이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떠드는 고모들에게 시준은 이제 그만 가도 좋다는 말을 건넨다. 



시준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도자기를 빚는 젊은 도공이다. 그러나 시준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바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그때 시준이 일하는 곳으로 얼마 전 그가 보냈던 편지가 반송된다. 그것은 시준이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어머니에게 보냈던 편지이다. 



시준은 그렇게 아버지의 부고를 직접 알리기 위해 어머니의 집을 찾아 떠난다. 어릴 때 아버지와 이혼한 시준의 어머니. 그녀는 이제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시우가 어머니께서 일하는 주소로 알려진 세탁소를 찾았을 때 가게는 굳게 닫혀 있다. 대신 시우는 그곳에서 자신의 동생을 만난다. 어머니가 새로 꾸린 가정에서 낳은 또 다른 아들 창수. 기껏해야 중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창수는 어머니를 도와 세탁소의 옷들을 배달하고 오는 길이다. 



시준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창수는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오히려 시준을 어머니 가 있는 자신의 집까지 데리고 간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창수는 시준에게 어머니로부터 자신에게 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과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한다. 



창수와 함께 도착한 집에서 시준은 어머니를 만난다. 영화는 시준과 그의 어머니와의 만남이 대체 몇 년만에 이루어진 것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만나지 못한 공백의 기간은 핸드폰 번호조차 없어 아버지의 부고를 편지로나마 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만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시준의 어머니는 시준이 전하는 편지를 받고 오히려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자신은 너의 아버지와는 아주 오래전에 끝났다면서 그의 부고조차 더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시준은 어머니의 행동에 큰 상처를 받고 집을 나선다. 하지만 시준은 집을 나서면서 어머니의 집 한 편에 놓인 자신이 어릴 적 만들었던 조악한 도자기 하나를 발견한다. 어머니가 여전히 자신을 향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를. 



영화 <내일의 시간>은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나 단서가 제한적인 작품이다. 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들은 헤어진 것인지 시준의 어머니는 어째서 과거에 시준이 만든 도자기를 보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그리움을 삭혀야 했는지를 영화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내일의 시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과거의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그 자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시준은 어머니를 보기 위해 찾았던 서울을 떠나 다시 공방으로 돌아온다. 늦은 밤에 공방으로 도착한 시준은 작업을 하던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다음날 시준은 다시 여느 날처럼 작업을 시작한다. 영화는 다시 작업에 매진하는 시준의 얼굴을 영화의 마지막 쇼트로 사용한다. 거기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낙관 대신에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는 어머니의 말에 상처를 받고 집을 나와 공방으로 돌아가려던 시준에게 건넨 창수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엄마가 형 많이 보고 싶어 했어요. 근데 이제는 안 오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과거는 당시의 소중했던 감정 때문에 오히려 현재에 더 많은 상처를 남긴다. 그렇다고 <내일의 시간>을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영화의 제목 속 내일의 의미는 먼 미래보다도 가까운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재의 희망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수


** 영화 <내일의 시간>은 왓챠와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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