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난 공주, 이건 취미> - 정지운 감독
“나 사실 공주고 이건 취미다.”
신입 때 실수해도 기 죽지 않는 팁을 달라는 질문에 달린 댓글이다. 처음 본 당시에는 마냥 웃겼던 댓글인데 곱씹을수록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사고회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때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늘 완벽하게 해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군다. 그렇기에 절망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실 난 어느 왕국의 공주이고 왕자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걱정했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아질지도 모른다.
캠코더 속 여자 아이에게 부모님은 공주라고 부른다. 우리 강아지, 내 새끼처럼 애칭인 줄 알았더니 그녀의 이름이 진짜 공주였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이름만이 공주는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공주처럼 살고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하신 그녀는 사실 바렝카슈 왕국의 공주라는 거짓말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는 믿고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늘 공주처럼 아름답게 차려입고 예쁘게 먹고 쓰레기는 손도 대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공주의 규칙인 마냥 체통을 지키며 살아간다. 월세는 세 달치가 밀려도 과일을 제대로 팔지 못해도 오히려 자신을 보고싶다면 과일을 사라고 한다.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양 행동하지만 그녀에겐 이 삶이 즐겁지만은 않다. 자신의 곁에 있는 시민들의 소소하고 자유로운 삶이 더욱 부럽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백을 통해 사실 자신이 바렝카슈 왕국의 공주가 아닌 서울시 오류동의 평범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드디어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뻐하는 그녀. 차려입었던 옷과 신발도 벗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노래한다. 아름답게 체면을 차리는 왕국보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며 평범하게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곳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난 공주, 이건 취미>는 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부문에서 한국경쟁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인 만큼 음악이 비중을 차지하겠구나 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음악이 더욱 중요한 뮤지컬 영화였다. 단편영화라는 제한 내에서 뮤지컬 영화를 퀄리티있게 제작할 수 있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영화 내의 모든 사운드트랙이 아기자기하고 영화와 잘 어울렸다. 배우님이 직접 노래를 부르셨던데 공주라는 인물의 해사하고 티 없이 밝은 이미지가 잘 살아났다고 느꼈다. 특히 공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부르는 엔딩곡은 princess에서 벗어나 Gongju 그 자체가 나타나는 행복한 곡이었다.
처음에는 어이없고 이해가 가지 않던 공주가 시간이 지날수록 예뻐보이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결국 내가 공주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해 라는 어려운 편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주처럼, 지금 내가 힘들고 가끔 무기력해도 나는 공주니깐, 이건 취미니깐 하고 생각한다면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지금의 나보다,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나에게 채찍만 주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쉽고 즐겁게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주는 영화다. 세상 물정 모른다고 생각했던 공주에게서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어울리고 살고 싶은 하루를 보내는 평범함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 봄을 맞이하며 삶에도 봄을 찾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따뜻하고 밝은 영화 <난 공주, 이건 취미>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