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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21. 2023

시간을 초월한 두 남녀의 ‘생일파티’

영화 <해피 버스데이 투> - 김영준 감독

         

     

많은 문화권에서 생일은 제의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제의는 대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치러진다. 그것은 소통의 한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 두 남녀가 있다. 계절은 가을이 지나가는 무렵이다. 날은 춥고, 불어오는 바람은 고독감을 자아낸다. 남녀는 각기 다른 쪽의 벽에 기대어 생일을 자축한다. ‘벽’은 보통 단절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여겨진다. 일례로 베를린 장벽은 독일 동서 분단의 상징물이지 않았던가. 그런 벽을 사이에 두고, 쓸쓸하게 “생일 축하합니다”를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반대편의 여자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둘은 서로의 나이, 처지 등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자기의 비루한 상황을 알려주고, 자기 같이 가난한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냐며 자조한다.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 역시 가난했지만 엄마를 ‘꼬셨고’ 자기 같은 이쁜 딸을 낳았다며 위로한다.         


   

담소를 나누며 관계가 깊어진 둘은, 서로의 내밀한 사연을 드러내며 보다 적극적으로 친교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프로포즈를 연습하고, 여자는 남자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라고 가정하며 결혼식 때 시아버지의 손을 잡게될 자신의 상황을 알린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주목할만한 대사가 등장한다. 여자는 만약 남자가 결혼해 딸아이를 낳는다면 이름을 ‘애영’으로 지으라고 일러주는데, 남자는 이름이 촌스럽다며 일축한다. 그런데 그때 여자가 사실 애영은 자신의 이름이며, 아버지가 지어주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자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애영이 이쁜 이름이라고 말하고는 정말로 딸을 낳는다면 애영이란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한다. 상황의 반전으로 유머러스함을 연출하는 해당 장면은 뒤따라오는 신들에서 남녀의 관계를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친밀감을 느낀 남녀. 여자가 먼저 헤어지기 전 얼굴이나 보자고 제의한다. 남자도 승낙하고, 벽을 넘어가는데, 거기엔 아무도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남녀는 서로를 찾다가, 부재를 확인하고는, 그냥 갔다고 넘겨짚으며 서로의 갈 길을 간다. 그런데 그 때, 벤치에 앉은 여자가 사진을 꺼낸다. 사진 속에는 ‘애영’의 유년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를 꼭 안고 있는 한 남자. 다름 아닌 벽 반대편의 그 남자다.                             



애영과 애영의 아빠는 시간을 초월해 조우한 셈이다. 서로가 공개한 안쓰러운 사연은 사실 애영의 가족 서사였다. 둘의 만남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무렵 영화는 남녀의 정면을 현시한다. 현재의 애영은 컬러로, 과거, 그러니까 어머니를 만나기 전의 애영의 아버지는 흑백으로. 둘은 동시에 “생일 축하합니다”를 내뱉으며 서로의 생일을 진심을 다해 축하해준다. 이후 엔딩크레딧에는 애영의 부모님의 모습이 등장하며 가족 서사로서의 측면을 부각한다.                


 

저마다 외롭고 슬픈 다른 시간의 남녀/모자는 대면하지 않고도 충분히 서로를 보듬었다. 그 행위는 애영과 애영의 아버지로 하여금 인생을 살아가게 할 힘을 줬다. 사실 그 힘으로 인해 어쩌면 둘은 만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해피버스데이 투>는 봄이 왔지만 아직은 밤이 쌀쌀한 근래에 모처럼 따듯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단편 영화였다. 이 훈훈한 생일 영화를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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