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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21. 2023

돕는 어른

영화 <99년식> - 이홍래 감독


필자가 99년생인지라 왠지 모르게 솔깃해져 시청한 영화이다. 도로변에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고등학생 영지가 있다. 영지는 99년식 아반떼의 폐차를 위해 혼자 대리기사를 부른다. 이윽고 중년 여성이 달려온다. 여성의 이름은 수미. 수미는 아반떼를 몰고 영지는 뒷자리에 착석한다. 영지는 별 말 없이 그저 앉아 있고, 수미는 딸의 전화를 받다가 돌연 화를 낸다. 돈이 없는 엄마에게 무얼 사달라하는 딸. 수미는 자신의 딸이 친구들을 잘못 사귀어 바람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 수미를 영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한 번 쓱 흘겨본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얼어있다. 영지는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고’,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수미는 영지에게 이런 저런 말들을 건네보지만 영지의 반응은 냉담하다. 영지는 마치 대리비로 수미의 인격까지 사버린 듯 무례하게 굴고, 수미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다가 생리를 한 영지가 인근 화장실에 가기 위해 정차를 요구한다. 생리대를 사기 위해 돈까지 빌려 달라고 하는 영지를 수미는 어이 없게 바라본다. 영지는 지금 당장 돈이 없다는 뜻이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영지는 마침내 수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사실 지금 수미가 몰고 있는 아반떼를 폐차하러 가는 길이라는 것. 마침내 영지와 수미는 폐차장이라는 곳에 도착하고, 영지는 수미를 떼어 놓은 채 단독으로 업자들을 상대하려 한다. 그런데 수미가, 끈질기게 버티며 업자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수미는 업자들이 영지에게 사기를 치려 한다고 생각한다. 업자들의 은근한 압박에 밀린 수미는 우선 차로 후퇴한 뒤, 영지에게 업자들이 민증을 요구하면 차로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역시나 업자들은 영지에게 민증을 요구했고, 영지는 민증이 차에 있다며 다녀 오겠다고 말한다. 영지가 탑승하자마자 수미는 문을 걸어 잠그고 수상한 폐차장을 빠져나간다.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지의 삶에 얽힌 슬픈 내력이 암시되고, 수미는 다른 폐차장으로 영지를 안내한다. 차 안에 들어 있는 지나온 삶이 ‘쓰레기’로 취급되는 폐차장에서 영지는 결국 폐차를 선택하고, 돈을 받는다.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대리비보다 더 많은 돈뭉치를 수미에게 건넨다. 그런데 수미는 거절하고, 영지가 약간의 돈을 얹어주자 마지 못해 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기 당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차에 탄 영지는 뾰루통한 목소리로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수미는 코웃음을 치며 그럼 방금 벌어진 일은 뭐였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에 영지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아직 많은 것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미성년자인 영지를 수미는 내내 돕고 보호했다. 영지의 다소 몰염치한 행위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대가도 크게 바라지 않는 수미의 모습이야말로 소위 ‘멋있는 어른’의 전형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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