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름이 다소 끼겠습니다> - 김종헌 감독
효은, 가람, 이슬 세 사람은 열여덟, 고등학교 친구 사이다. 함께 등교하고, 하교하고, 맛있는 것은 나눠 먹는다. 셋은 계속 함께할 줄 알았지만 가람이 이사를 가게 된다.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셋이 신나게 파티를 꾸며 좋은 추억을 남기고 보내주려던 효은은 가람과 이슬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를 느낀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 하지만 버스 안전봉처럼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효은이 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에게 바나나우유를 챙겨주는 것과 실없는 말을 던지는 것이다.
슬이 다쳤음에도 아는 척하지 않고, 슬이 빌려간 자신의 MP3만 찾으며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가람에 효은은 화가 난다. 그래서 가람을 찾아가 이유를 묻고 가람은 대답한다. 슬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이성적으로. 잠시 멈칫한 효은은 그게 다냐고 되묻는다. 가람은 그런 효은에게 너도 게이냐고 묻는다. 레즈비언도 아니고 게이라니.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대답 없는 질문들만 던지다 서로의 마음만 더 복잡해진 채 그들은 돌아선다. 가람은 효은이 떨어뜨리고 간 명찰만 멍하니 바라본다.
효은은 가람에게 다녀간 뒤 슬을 불러 함께 떡볶이를 먹는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떡볶이를 먹는다. 효은이 접속하지 못했던 슬의 싸이월드에 그저 렉이 걸렸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슬과 가람 사이에도 렉이 걸린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떡볶이를 먹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 기상예보에는 구름이 다소 끼겠다고 하더니 비가 오고야 만다. 분식집 아주머니는 우산을 빌려주려 하지만 효은은 슬과 함께 쓰고 갈 것이라며 거절한다. 그들 사이에 비가 내린다 해도 효은은 함께 우산을 쓰려한다.
영화 <구름이 다소 끼겠습니다>는 청소년 시절의 동성애를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생긴 세 사람 간의 심경 변화를 조명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슬의 고백 장면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대신 효은의 변함없는 태도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특히 영화 장면 중 효은이 두 사람에게 전해주려던 우정 노트가 눈에 띄었다.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 그리고 비가 갠 뒤에 맑은 날 뜨는 무지개. 효은은 두 사람이 어떻든 그저 함께 구름을 지나고 비를 지나고 즐겁게 무지개를 맞이하길 바랐던 것 같다.
슬이는 동성 친구에게 고백이라는 비구름을 몰고 온다. 효은은 그럼에도 함께 우산을 쓰고 맑은 날을 기다리며 무지개를 전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람에게는 난데없는 비구름에 우산도 없이 젖어버린 셈일 것이다. 영화는 결국 그 어떤 것도 암시하지 않으며 결말을 맺는다. 어쩌면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싶기도 한 결말이지만 현실적인 결말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폴더폰, MP3, 싸이월드를 쓰던 15년도 더 된 과거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한 친한 동성 친구로부터의 고백, 결말을 예상했음에도 전한 마음, 그 사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친구. 고등학생이던 그들이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들 사이의 구름이 천천히, 언젠가는 개길 바랄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필자도 그들에게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이 오길 기다리며 영화를 마무리하고 싶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