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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Mar 25. 2023

새로운 시대의 윤리 감각

영화 <큐> - 김은주 감독


 “Q, 서울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없어요. 대신 불빛들이 많아요. 여기도 저기도 다 불빛이에요.”,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자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이 도시는 잠들지 않아요. 모두 깨어있죠. 굉장히 바빠요 다들. 무언가 하면서, 잠자는 걸 계속 미뤄요.” 묘사만으로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가까운 미래, 가구점의 AI 종업원 ‘Q’와 새로 들어온 직원 ‘유나’의 대화다. ‘AI와 인간의 만남’이라하니, 관련된 많은 영화가 스쳐 지나갔다. 가령 <Her>같은. 영화는 줄곧 Q와 유나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함께 일하며 Q를 지켜봐 온 유나는 이런 저런 말을 걸며 책을 건네기도 한다. 다음날 유나는 점심을 포장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게에만 있는 Q에게 외출을 제안한다.



유나는 Q에게 서울의 밤공기를 선사해주며, 붉은 조명이 화려한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곳은 다름 아닌 칵테일 바. 칵테일 바는 칵테일 바인데, 조금 특이한 칵테일 바다. 알고 보니 전직 AI 연구원이었던 아는 형이 퇴사하고 차린 칵테일 바였던 것. 사장은 AI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그들도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이 ‘AI주의자’ 형은 Q에게 술 한 잔을 권한다. 난생 처음 알코올을 섭취한 Q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옆자리의 또 다른 AI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남자 AI는 Q에게 일시적이나마 기계 부품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



술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무언가를 처음 감각한 Q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기분이 너무 좋은 Q는, 유나에게 묻는다. “어떤 기분이에요? 사람으로 사는 거.” 유나는 지루하게 반복된다는 점에서 AI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 답해주지만, 그래도 Q는 사람의 삶이 부럽다. 칵테일 바에서 나온 유나와 Q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치며 노는데, 그 때 갑자기 Q가 기절하듯 주저앉는다. 그리고 다음 날 대면한 유나와 Q. 그런데 Q가,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어제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듯한 표정으로 Q를 맞이한다. Q는 첫만남 때 그랬듯 가구에 대한 설명을 해줄 뿐이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사무적인 표정을 지었던 Q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민다. 그것은 동요 같기도 하고, 낱낱이 알게 된 세상의 진실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노력으로도 보인다. 영화는 AI에 대한 논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지금, 머지않아 다가올지도 모르는 시대를 핍진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서사에 개연성을 더해줬다. 정말로 ‘AI 노동자’들이 감정과 이성을 갖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구분선은 어떻게 다시 그어져야 하나? 이런 윤리적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가온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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