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 최성은 감독
삶이 내게 설명을 빚진 것 같은 때가 있다. 무력한 나를 왜 뒤흔들어 놓은 일이 왜 생겨야만 했는지,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어떻게 대해야만 하는지.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원한다. 답을 찾고자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그에게 아무런 실마리도 주지 않고, 그는 고향에 도착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고향을 떠난다. 그가 아무 설명도 얻지 못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설명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도, 사람도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고향인 경주를 향한다. 버려져 폐허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 집처럼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많이 달라져 있다. 우연히 동창을 만난 그는 친구와 함께 찻집에 들르고, ‘가족에 대한 고찰’에 대한 책을 발견한다. 마침 동창의 친구가 작가와 지인인 관계로 그는 작가의 강연에 참석하기로 한다.
꼭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 책은 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는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다가 조금 늦게 강연에 참석한다. 강연이 끝난 후 함께 가지는 술자리에서 그는 작가에게 묻지도 않은 어린 시절을 늘어놓으며 한껏 들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쯤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물음에 작가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자 주인공의 태도가 돌변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족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배신당한 듯 작가에게 언성을 높이고 이내 자리를 떠나버린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묘지를 찾은 그는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듯 착잡하다.
고향을 떠나는 주인공의 얼굴이 좋지 않은 것은 그가 끝내 설명을 얻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용서해야 할지, 고향인 경주와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픈 과거의 기억들을 묻어야 할지에 대한 어떤 답도 구하지 못 했다. 자신도 아직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에 뻔뻔하게 언성을 높였을 때, 그 화는 작가라기보단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 테다. 허무하게 돌아가는 주인공은 경주로 오는 기차에서보다도 더 혼란스러워 보인다. 언젠가 설명을 얻게 되는 밤, 주인공은 자신이 그토록 좇던 답은 경주도, 작가도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제갈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