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디매거진 숏버스 Apr 07. 2023

바람직한 낮을 지탱하는
무수한 밤들

영화 <경화> - 유영태 감독


‘외도’ 그러니까 바람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기혼 남녀가 바람을 피냐와 같은 문제는 차치하고, 외도 그 자체는 사회의 바람직한 도덕 규범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밤은 분명히 낮과 함께 우리의 시간을 구성한다.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유포되는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 관념이 있는 반면, 성산업과 같은 ‘날개 없는 에로스’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범적인 결혼제도 이면에는 외도도 있다.


 ‘경화’라는 중년 여성이 있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남편의 말, 고등학생 딸아이로 미루어보아 아마 오십 전후일테다. 그녀의 삶은 잿빛이다. 싱그러움이나 알록달록함은 없고, 온통 칙칙함뿐이다. 사회에 찌들어 피곤한 남편은 오자마자 잠이 들거나 라면을 끓여달라는 얘기만 반복한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과의 관계도 서먹하다. 이는 의외로 많은 부부, 가정의 모습일 수 있는데, 여하튼 그러한 풍경은 경화의 이어질 행동(외도)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외도 파트너인 남성은 학교(대학이든, 중고등학교든) 동창으로 추정된다. 그는 무미건조한 남편과 달리 정서적이고, 빈말도 잘한다. 경화는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이 남자와의 만남을 그만둘 수가 없다. 경화에게 있어 결혼생활은 지루하게 재방영되는 삼류 드라마일텐데, 그 드라마의 세계로부터 경화를 달래줄 거의 유일한 탈출구가 남자와의 밀회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남자가 카페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딸이 목격하고,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그 남자를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경화는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 나가고, 마침내 남편에게 꼬리를 잡힌다. 현장의 소리를 엿들은 남편은 침통해 하면서도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 경화와 술자리를 가지며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초반부에 무심하게만 그려진 남편은 실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남편에게는 가정을 유지할 의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화는 그럴 자신이 없다고 단박에 말한다.



작품은 많은 것의 대립 구도를 보여준다. 경화의 삶과 엄마라는 역할의 대립, 정상가족이라는 낮과 외도라는 밤, 가정을 지키려는 무뚝뚝한 남편과 가정을 파괴하는 사랑꾼 남자 등등. 이 대립에서 어느 한쪽이 옳다고 잘라 말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보기 좋은 한낮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숱한 밤이 있다는 것이다. 낮을 이루는 모범적인 사람도 밤에는 외도를 하고 경범죄도 저지르며 사창을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불편해하지만, 그래도 사실임은 틀림이 없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의 이중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