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디매거진 숏버스 Apr 11. 2023

잔반 없는 날

영화 <급식> - 한혜인 감독


가연은 교사였지만 식이장애로 인해 학교를 쉬게 된다. 그러나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돌봄교실 강사로 일하게 된다. 식이장애를 모두 치료받지도 못한 채로 그녀가 맡게 된 일은 아이들의 잔반 검사이다. 선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모두 같은 양을 배식하고 모두 남김없이 먹고 검사를 받게끔 한다. 다 먹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강제로 잔반을 먹인다. 섭식에 문제가 있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잔반을 먹도록 강요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가연은 내적으로도, 선임 교사와도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는 결국 가연은 그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상황에 순응해버린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는 더 나은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규칙 아래 생활해나간다. 하지만 때로는 규칙, 교육, 훈육을 명목으로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도 많다. 이렇게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가해지는 개인에 대한 통제는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들에 있다. 건강이라는 명목 하에 이행되는 잔반 검사, 평등한 생활이라는 명목하에 강요되는 복장 규정 등 나를 이루는 것들이 사회를 이뤄야 한다는 이유로 통제받곤 한다. 그리고 학생으로서는 모르지만 교사들에게 있어서도 비슷한 상황들이 존재할 것이다.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어도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그것을 이해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도 먹기 싫은 잔반처럼 답답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발하는 인물과 받아들이는 인물 모두 존재한다. 선임 교사 미은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가장 위에 서서 강요하는 인물이다. 반면 가연은 이러한 학생들에 대한 강압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미은에게 자율배식과 잔반검사 폐지를 제안한다. 하지만 가연이 가장 두려워하는 식이장애를 협박 삼아 의견을 묵살한다. 결국 가연도 미은처럼 체제에 순응한다. 자신이 삼키지 못해 바닥에 토해버린 음식물을 정신나간 듯 주워먹는 모습으로 말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는 세상에서 가연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실은 미은도 어쩌면 그러한 길을 걸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영화에는 받아들인 인물만 존재하게 되었다.



여러 교육기관을 거쳐오며 영화 <급식> 내에서 보여준 일들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어봤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선생님들의 잔반에 대한 지적이 존재했었다. 특히나 친구들 중 김치를 안 먹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꼭 몇몇 선생님은 그 김치를 억지로 먹어보게끔 했다. 그것이 먹어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편식을 방지하기 위한 훈육책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그것은 강요이고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 뭣 모르고 강요당한 시절도 있었다면 꽤 심도 있는 사고가 가능해진 고등학교에서도 전체에 대한 통제는 늘 존재했던 것 같다. 특히나 기숙사 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대입 성공이라는 목표를 품은 채 사고방지라는 명목으로 여러 방면에서 통제가 가해졌던 것 같다. 일례로 영화 <급식>에서 먹도록 강요됐던 것과 달리 먹지 못하도록 통제됐던 삶이었다. 그것이 모두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잔반을 모두 먹게 한 것 만큼이나 참 어이없는 일이기도 했다.



영화는 내내 흑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 아주 짧게 컬러로 변하며 끝이 난다. 이는 가연이 자신이 토한 음식을 주워먹은 이후이다. 흑백에서는 힘없는 모습과 수수한 옷차림의 그녀였다면 마지막 등장씬에서는 차려입은 모습에 무언가 굳게 다짐한 듯한 얼굴로 화면에 비친다. 그리고 이런 가연을 컬러로 물들인다. 아름다운 겉모습, 컬러 화면으로 통제에 대한 순응을 마치 ‘정상’인냥 보여준 듯하다. 영화는 가연이 교탁에 앉아 카메라로 추정되는, 혹은 교실 뒤편을 응시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고통 속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관객들에게 던지는 무언의 압박과 분노같기도, 결국 자신 또한 미은과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암시같기도 하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작가의 이전글 바람직한 낮을 지탱하는 무수한 밤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