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 홀리나잇> - 조영근 감독
크리스마스는 시작이기도, 끝이기도 하다. 연말이니 한 해의 마무리를 상징할 수도 있고, 예수의 탄신일로써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날, <오! 홀리 나잇>의 두 주인공들은 각각 그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거나 완전히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한 쪽에게는 가혹할 수 있는 이 성탄절의 이중성은, 결국 누군가가 관계의 종착역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해소된다.
조명이 화려하고 연인들이 거리를 쏘다니는 크리스마스 날, 소영은 전 남자친구인 민호의 집을 찾는다. 같이 샀던 카메라를 내놓으라는 명분이었지만 그게 단지 핑계라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소영은 카메라를 충전시켜 달라며 시간을 끌고 민호와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 한다. 민호는 순순히 소영이 하자는 대로 따르지만, 그건 단지 여자친구와 만나러 가기 전에 소영을 내보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때 둘에게 이 ‘거룩한 밤’은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교회에 다니는 소영은 새로운 시작으로써의 성탄절을 관계를 재개할 기회로 보고, 아마도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민호에게는 소영에게 제대로 선을 그을, 관계의 끄트머리가 된다.
이런 소영의 끈질긴 노력에도, 민호는 끝까지 그에게 선을 긋는다. 민호에게는 휴일을 같이 보낼 새 여자친구가 있다. 반면 소영이 크리스마스 날 전 남자친구를 찾는 걸 보면 민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둘의 연애 당시를 상징하는 카메라를 대한 태도에서 둘은 명확한 차이점을 보인다. 소영은 같이 구매한 카메라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충전을 시켜서라도 꼭 상태를 확인해야 겠다고 요청하는 한편 민호는 카메라나 충전기가 어디 있는지는 커녕 카메라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미련 없는 모습이다.
관계란 일방적으로 마무리될 수는 있지만 혼자서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연애 당시의 소영과 민호는 많이 싸웠으나 현재는 귀찮게 구는 소영을 민호가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모양새다. 싸움을 통해서라도 둘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음을 의미하는 한편, 상대의 요구에 전부 순응해주는 것은 최대한 접촉을 피하기 위함이다. 역설적이게도 싸움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소영은 이제 자기 때문에 잠을 설치지 말라며 관계의 종말에 순응했음을 알린다. 크리스마스의 이중성은 그렇게 해소되고,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소영은 그 관계를 추억으로만 회상할 뿐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제갈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