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포즈 1분위> - 이수민 감독
젊은 남녀가 한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작 장면을 보면 흔한 멜로물처럼 보여지지만, 영화는 실은 완전히 딴판의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뜬금없이 남자에게 결혼하자는 프로포즈를 하고, 남자는 의아해한다. 프로포즈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남자는 대학 동기와 술자리를 함께 하며 이것저것 묻는다. 친구는 여자가 남자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로포즈의 사유는 영 엉뚱한 것이었다. 여자는 낮은 소득 분위를 갖기 위해 남자에게 결혼을 제안했다고 말한다.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을 부담하기가 어려워졌는데, 소득이 없는 대학생 둘이 결혼을 하면 1분위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자는 남자 역시 결혼을 하면 비교적 손쉽게 주택 청약을 받는 등 여러 경제적인 혜택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결혼을 부추긴다.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간다.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으레 그렇듯, 말 없고 신비스러운 여자에게는 여러 소문이 따라붙는다. 여자가 수업에 전날과 같은 옷을 입고 왔다는 이유로 남자와의 동거를 의심하고, 산부인과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도 나온다. 여러 정황을 통해 여자는 졸지에 급작스러운 임신을 한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동기와 이어나가던 남자는 어딘가를 향해가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말을 건다.
남자는 여자가 임신하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여자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결혼을 제안한 가장 큰 이유는 커밍아웃의 여파였다.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여자의 부모는 여자를 끊임없이 결혼정보회사에 끌고 갔다고 한다. 여자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릴만한 동기들이 다 졸업한 다음에 다시 학교를 다니겠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도 충분히 벌어놓으면서 말이다.
돈 없는 청춘이라는 처지와 교차된 (성)소수자성이 서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품을 보고 나니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당장 내 주위에서 목격되지는 않지만, 여자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혹은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고단한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내 또래의 이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무의미한 희망과 기대를 품어본다. 대책 없는 낙관은 유해하지만,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