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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Apr 15. 2023

가족이란 재산에 기초한 결속체

영화 <땅따먹기> - 정치헌 감독


영안실에 한 남자의 시체가 놓여있다. 그 앞에는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있고, 시체의 양옆에 일렬로 망자가 된 남자의 가족들이 일어서있다. 그들은 송장을 확인하고는, 매우 비통한 심정인 것처럼 목 놓아 운다. 여기까지는 가족의 임종을 맞이하는 이들의 흔한 풍경이다. 그런데 일순간에 거짓말같이 울음이 멈추고, 가족들은 무표정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죽은 이의 몸을 바닥 삼아 동전을 굴리고, 도형 모양의 그림을 새겨넣는다. 이른바 ‘땅따먹기’를 하는 것이다. 


찰나에 희비가 교차한다. 누군가는 많은 재산을 배당받아 웃고, 다른 누군가는 그러지 못해 찡그린다. 저승사자처럼 보였던 시체 앞의 남자는 실은 게임을 진행하고 참가자들의 갈등을 중재하는 사회자였다. 아무리 상속이라는 현실의 문제가 존재하더라도 시체를 두고 오락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데, 이는 ‘낯설게 하기’의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비도덕적이며 기괴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감독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가족제도의 본질이라고 봤다.



가족에는 아주 빈번히 낭만의 감각이 덧씌워진다. 가족의 사랑과 힘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차고 넘친다. 많은 이들이 가족이라고 하면 세속의 문제와는 무관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충만함이나 애틋함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런 가족에 대한 통념적 인상은 대개 체제의 여러 이데올로기적 작업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역사적으로 검토해 보았을 때, 가족제도는 원시 공산사회가 사유재산에 기초한 새로운 단계의 사회로 이행하는 무렵 정례화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가족의 본질은 재산에 기초한 결속체가 된다.



가족은 사유재산에 기초해 형성되었지만, ‘자유민의 사회적 생산’이 생산의 기본 형태가 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다른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력 재생산이다. 문화권에 따라 가정을 꾸릴 수 없기도 했던 노예와 달리 명목상 동등한 권리를 가진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은 이제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 가령 안정감이나 소속감, 사랑에 대한 열정, 배우자에 대한 헌신 따위를 위해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런 가족의 형성은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을 담당한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형도, 「안개」” 


감독은 의도적으로 ‘시체 위 땅따먹기’라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가족의 낭만 서사가 가진 허위를 폭로한다. 가족은 하늘 위를 떠다니는 ‘날개 달린 무언가’가 아니라, 땅에 붙박여 있는 구체적 실체다. 체제는 이 가족제도를 온전히 유지하는 데에 사활을 건다. 그래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가족에 대한 온갖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구·가족 정책의 차가운 수치들을 보면 가족의 본질은 너무도 쉽게 드러나고 만다. 감정 없는 통계표에서 누군가의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들은 마치 가축과 같이 다루어진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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