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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Apr 15. 2023

욕망에 구부러진 진실

영화 <상놈> - 박상혁 감독


19세기 말 조선, 유 진사 일가에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자인 유한세 그리고 서얼 출신인 유명세다. 장자 유한세는 가문의 장손임에도 벼슬에 뜻이 없고 기생집에 드나들기만 하며 유흥에만 빠져있다. 반면 서얼 유명세는 아버지의 곁에서 그의 부름대로 행하며 신임을 얻고자 한다. 가문을 이끌어나가야 할 장손이 뜻대로 되지 않자 유 진사는 유한세를 친구이자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민씨 일가에 보내려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명세는 자신이 장손이자 형인 유한세를 모시고 가겠다 한다. 대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길 허락해달라 요청하고 유 진사는 떨떠름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렇게 유명세는 아버지 라고 처음 불러본다.



장면은 이내 의금부에 갇혀있는 유한세를 비춘다. 아니 유한세를 사칭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유명세일지도 모른다. 그는 유가 장손 유한세를 살인하고 유한세를 사칭하고 있다는 죄로 잡혀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양반인 유한세라 주장한다. 의금부 나장은 유명세가 유한세 행세를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거짓 증언을 하는 그에게 형을 내린다. 하지만 형을 받던 중 금부도사가 나타나 유명세를 잠시 풀어주고 그는 유한세라며 귀한 사식까지 준다. 여기에 아버지 오 진사까지 발걸음해 그가 유한세임을 증명한다. 결국 그는 풀려난다. 그는 진짜 유한세였던 것일까.



풀려난 그에게 유 진사는 깍듯하게 대하며 유씨 가문의 장손의 명예를 높여달라 한다. 다만 다시는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청한다. 그는 유명세였다. 그가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유한세로서의 삶을 살게 됐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혈통은 인정받지 못한 채 씁쓸한 유한세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영화 <상놈>에는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 진사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묻으면서까지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싶은 인물이다. 서얼 출신의 자식은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유한세가 죽었어도 유명세가 죽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유명세는 혈통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다. 그가 가장 바랐던 것은 유한세의 삶이었기에 그의 행동, 말투, 글씨체까지 따라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가 그보다 바랐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에서 마치 자신의 직업에 열과 성을 다하는 듯한,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 같은 천인 의금부 나장도 사실은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유명세를 신문하며 계속해서 그가 자신과 같은 천인이기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바랐던 것 같다. 결국은 끝내 수사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권력의 눈 밖에 나버린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했다.



<상놈>은 단편영화에서 쉽게 보지 못한 사극영화였다. 자칫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 장르적 한계였음에도 의상과 국악 사운드가 극에 몰입하게끔 도왔다. 제한된 장소, 제한된 인원임에도 부족함도, 무리도 없이 하나의 이야기를 잘 풀어낸 영화였다. 한 사건을 두고 각각의 욕망을 가진 인물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며 이것이 비단 19세기뿐 아닌 현재의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인물상들이지 않나 싶었다. 또 진실은 충분히 힘으로 구부려 왜곡시킬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유명세가 풀려난 것에서 가능한 명제라고 생각도 됐지만 결국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모두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실은 진실로부터 도망친 상황들이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유명세가 풀려나며 의금부 나장은 그에게 천벌을 받길 기도한다고 말한다. 유명세는 그에게 자신이라면 차라리 다음 생에 양반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겠다 한다. 21세기 유명세가 다시 태어난다면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돈에 의한 신분제 속에서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럼 그는 또 어떤 기도를 할까. 그가 할 기도가 사실은 필자와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하며, 필자도 유명세와 다름없는 상놈인가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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