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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21. 2023

당신의 옥상들은 안녕하신가요?

영화 <옥상들> - 이효수 감독


고등학교 시절 소방훈련으로 학교 옥상에 올라가본 적이 있다. 옥상 개방이 거의 없는 요즘 시대에서 건물 옥상으로 다같이 이동이라니 그 광경이 어떨지 궁금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해 질 무렵 올라간 학교 옥상은 꽤 멋졌다. 무채색의 바닥에 비록 아무것도 없었지만 뻥 뚫린 곳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탁 트인 옥상이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영화 <옥상들>에서 옥상은 주인공이 극단적 선택을 망설이는 장소로 설정된다.



영화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A로 시작한다. 그러나 다음 장면. 죽은 줄 알았던 A는 떨어져있는 A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본 마냥 침을 모아 뱉는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와 있는 A는 건너편 건물 옥상에 B를 발견한다. 핸드폰 카메라로 확대해보니 B가 손을 흔들고 있다. 어색한 듯한 A는 따라 손을 흔든다.



B는 손 흔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밌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A도 웃으며 열심히 이를 따라 춘다. 여자는 웃긴 동작을 멈추고 진지하게 무용을 시작한다. A는 과연 가능할까 하면서도 이를 시도한다. 상의까지 탈의한 A의 춤은 예상치 못하게도 아름답다.



온 옥상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던 A는 B를 향해 그 곳으로 가겠다 표시하지만 B는 손짓으로 이를 거절한다, 그럼에도 A는 B를 향해 간다. 



그 사이 뛰어내렸던 A는 사라지고 없다. A는 B가 있던 옥상으로 올라가지만 B 또한 사라졌다.



반대편 건물 옥상들에서는 A가 했던 것처럼 여러 사람이 핸드폰 카메라로 A를 촬영하고 있다.



어느새 시선은 A가 아닌 그들의 시선으로 바뀐다. A는 그들을 향해 B가 자신에게 그랬듯 천천히 손을 올린다.



<옥상들>은 극단적 선택을 위해 옥상에 오른 한 남자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 흑백 필름과 대사 없이 이어지는 7분의 러닝타임은 시청자에게 묘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거기에 옥상이라는 장소의 폐쇄성은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옥상은 수직 상승의 면에서는 개방되어 있다는 점에서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수평으로 따졌을 때는 사면이 모두 막힌, 벗어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절망적인 느낌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매체에서는 옥상을 로맨틱한, 힐링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삶의 마지막을 떠올리는 불안하고 위험한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처음 A에게 옥상은 부정적인 장소에 해당했지만 B로 인해 그곳을 스스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B를 찾아 향한 옥상에 B는 없고 방금 전 자신과 같은 다른 이들을 마주한다.



A가 마주한 다른 건물들의 사람들은 또 다른 A의 자아가 아닐까. 살라고 열심히 손과 몸을 흔드는 자아와, 죽음을 앞두고 무심하게 바라보는 자아들. 그리고 다시 무심한 자아들에게 살라고 손을 흔드는 A까지. 영화는 여러 옥상을 통해 내면의 여러 자아와 옥상의 모습을 보여준 듯하다.


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출연진도 적고 대사도 없지만 ‘옥상’이라는 소재를 매력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불안하면서도 아름답기도 한 옥상은 청춘과 닮아있어 더욱 와닿았다. 흔하디 흔한 초록 바닥의 옥상들을 떠올려보며 관람해보길 권한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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