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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24. 2023

거북이와 어린아이,
양자의 해방을 꿈꾸며

영화 <거북이 대소동> - 김경정 감독


이야기는 거북이에 대한 원대한 작전으로부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라는 그림책을 보고 감명받은 ‘이지’는 어린이집 수조에 갇혀 있는 거북을 바다에 놓아주려 한다. 사실 민물거북인 옐로우벨리 터틀은 바다에서 살 수 없지만(...), 그런 설정상의 작은 오류는 작품의 이해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튼 이지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동료를 모집한다. 그들은 친구 소정과 하준. 그러나 소정은 감기에 걸렸고, 하준은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동생 다준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만남은 성사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이지가 엄마를 만나 소정의 할머니가 준 간식을 빼앗기고, 부모와 식사를 하고 방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장면들은 소녀가 처해 있는 억압적인 가정 환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식사를 하던 중 아빠는 이지의 삐뚤어진 자세와 편식을 고압적으로 지적한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그녀에게 “대답”, “울면 더 혼난다“ 따위의 말을 하고 자신의 시험지에 낙서를 한 이지의 행동을 아내에게 타박한다. 집에서 이지는 언제나 야단맞고,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되는” 처지다. 이 배제의 논리는 작품 내내(실은 우리 사회에서) 작동한다.



우여곡절 끝에 거북이 해방(?) 원정대를 결성한 이지와 친구들. 이지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친구들이 뒤따른다. 그러나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의 대문을 열자 튀어나온 닭이 짖는 소리에 놀라 줄행랑을 치고, 곧 철거할 것으로 보이는 낡은 방방에 매혹돼 여정을 잠시 중단하고 점프를 하며 논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도 배제의 논리가 작동한다. 하준의 동생이자 무리에서 가장 어린 다준이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방방을 타지 못한 채 거북이를 지키는 일을 부여받는다. 서러운 다준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다른 친구들은 약하게 뛰기로 합의하며 다준을 “끼워준다”. 그 와중에 거북이는 풀숲으로 사라져버린다.     



한편 방방을 타며 놀던 중 이지의 점프에 밀린 소정이 실수로 다준을 밀치는 사고가 발생하고, 하준은 머리를 심하게 다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방방 아저씨가 와서 자초지종을 묻는데, 이지는 소정만을 탓한다. 이후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모에게 혼난다. “왜 쓰지도 않는 걸 거기 세워놔”라며 할머니가 두둔해주기도 하지만, 소정은 집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정말 서럽게 엉엉 운다. 소정을 본 이지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영화는 어린 아이들에게 대체로 가혹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세상을 꼬집는다. 할머니의 말대로 사용하지 않는 방방은 어른인 주인아저씨가 치워 놓았으면 될 일이다. 한참 호기심 많을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될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무슨 훈육 동맹이라도 맺은 듯, 밖에서 다치고 온 자식을 혼낼 뿐이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어른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고 산만하다. 그러나 어른들 역시 모두 한때 아이였고, 그 유년시절의 경험은 한 사람의 일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화두가 되고, 아이의 철 없는 행동을 ‘잼민이’라며 희화화하는 세상. 그런 세상은, 자가당착에 빠진 세상이 아닐까 한다. 그 세상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태어나고 자라나야 하는데 말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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