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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24. 2023

이승과 저승 사이

영화 <와이파이> - 김창현 감독 

면접 대기장처럼 차갑고 스산한 분위기의 복도. 그런데 복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행색이 무언가 수상하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이부터 환자복을 입은 사람 반대편에는 안전모를 쓴 채 얼굴에 멍이 든 사람도 보인다. 저마다의 사람들은 손에 안내 경고가 써진 종이들을 들고 있다. “신입 영가 등급 판정 받는 곳”, “빙의 발각 시 항아리 형”, “주의! 사람한테 손대면 모습이 보여요!”. 그곳에 앉아 있던 승희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면접장 안으로 향한다. 면접장 안에는 검은 복장의 저승차사들이 앉아 있다. 저승차사가 승희에게 묻는다.


영화 <와이파이> 중


“힘들수록 악착같이 버텨내야지. 고작 그거 힘들다고 자살했어요?”     


영화 <와이파이>는 사후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이다. 승희는 젊은 청년이지만 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사후 세계에서는 자살한 이들을 곱게 저승에 보내주지 않는다. 그들을 생전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실패한 영혼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승희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 한 자취방에 지박령으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무원 준비생 박구를 만난다. 


영화 <와이파이> 중


승희는 박구의 자취방에서 머물면서 저승차사가 준 스마트폰으로 환생 신청을 한다. 환생을 하게 될 경우 자신의 예비 부모가 재벌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승희는 박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듯이 환생 신청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영화 <와이파이> 속 세계에서는 저승에서조차 자신의 우수함을 증명해야 한다.


영화 <와이파이> 중


그렇게 승희는 열심히 쓴 환생신청서를 통해 1차 시험에 합격한다. 비록 지박령이지만 이제 2차 면접만 합격한다면 환생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승희와 달리 박구는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그로 인해 자살을 기도한다. 마치 살아 생전에 승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영화 <와이파이> 중


영화 <와이파이> 속 흥미로운 점은 귀신이 된 승희와 공무원 준비생 박구의 상황이 교차되면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이다. 저승의 승희는 이승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고, 이승의 박구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해 저승으로 가고자 한다. 이승과 저승의 존재들이 각각 서로의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 때문일까, 박구의 자살 기도를 저지하고 그로 인해 저승에 존재하는 규칙을 어기고야 만다. “주의! 사람한테 손대면 모습이 보여요!”


영화 <와이파이> 중


하지만 살아 있더라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박구는 결국 생계가 어려워진다. 그로 인해 자취방의 전기세와 수도세가 끊겨 버리자 승희의 상황도 곤란해진다. 와이파이가 끊겨 스마트폰으로 2차 면접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박령이기 때문에 박구의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승희는 결국 박구의 몸에 빙의를 시도한다. 면접 시간이 임박할 때가 되어 겨우 빙의에 성공한 승희는 박구의 데이터를 빌려 그의 몸으로 면접에 임한다. 


영화 <와이파이> 중


하지만 허무하게도 면접 시간에 늦어 승희의 환생은 물거품이 된다. 좌절하던 승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면접장에 전화를 걸고 묻는다.


영화 <와이파이> 중


“한 번만 봐주시면 안돼요? 일부러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영화 <와이파이> 속 세계는 잔인하다. 죽어서조차 편안한 삶이 제공되기는커녕 심사를 거쳐 영가 등급을 판정받아야 하며 자살한 이에게는 실패한 영혼이라는 낙인까지 찍힌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지독하게 잔인한 세계가 저승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살을 후회하는 승희에게 저승차사는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영화 <와이파이> 중


“죽고 싶을 때 죽어놓고 이제는 살겠다고 그러는 거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하지만 자살을 당사자만의 선택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정말 오롯이 우리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삶은 우리의 선택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박구처럼 내가 한 노력에 대한 결실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 역시도 빈번하다.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했던 승희와 박군을 돕지 않는, 즉 시스템이 부재한 이승은 그들에게 이미 저승이나 다를 바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와이파이> 중


하지만 영화 <와이파이>는 이에 대한 대답 역시도 이미 준비해놓은 듯하다. 환생 면접장에 전화를 건 승희의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이러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건 그쪽 사정이죠.”     


엔딩크레딧에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에도 불구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영화 <와이파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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