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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21. 2023

영화 <한, 숨> 속 한숨의 형태

영화 <한, 숨> - 

    

한숨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근심과 걱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내쉬어지는 한숨. 긴장이 풀리며 내뱉게 되는 안도의 한숨. 영화 <한, 숨>을 보며 든 생각도 이에 대한 것이었다. 이 영화의 한숨은 과연 어떠한 종류와 형태일까 하는 생각 말이다. 서정암 감독의 영화 <한, 숨> 속 주인공 진태는 친구를 믿고 주식에 뛰어들었다가 전 재산을 잃는다. 심지어 사채에까지 손을 뻗은 진태이지만 이번엔 진짜 믿을 만한 종목이라는 친구의 말에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품는다. 하지만 그 순간 복도에서 한 여성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러고보니 진태가 친구의 전화를 받는 복도 속 공간은 얼핏 병원의 모습을 띠고 있다.      


영화 <한, 숨> 중


한 여성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진태의 얼굴 다음으로 화면은 암전되고 영화의 타이틀이 올라온다. 다음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피곤한 얼굴로 잠에 든 진태의 얼굴이다. 하지만 화면이 암전되기 직전 진태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의 감정 따위는 더이상 그에게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정황 상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 사진 속 나이 든 여성은 진태의 어머니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밀려오는 하품을 참느라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는 진태의 모습은 옆에서 슬픈 얼굴로 조문객을 맞이하는 진태의 누나와는 대비된다. 진태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조문객들이 아닌 조문객들이 부의금을 넣는 상자이다.      


영화 <한, 숨> 중

  

영화 <한, 숨>은 주식과 사채로 전 재산을 잃은 진태의 상황이 어떻게 가족의 죽음에 대한 슬픔마저 빠르게 휘발시키는지 보여준다. 어머니가 죽는 순간 진태의 표정을 비춘 영화가 그 이후의 슬픔을 부러 보여주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영화는 어머니가 죽은 순간 진태의 표정과 장례식장에서 태평하게 잠이 든 진태의 얼굴을 교차시키며 그 사이에 있었던 애도와 슬픔의 과정을 생략한다.      


영화 <한, 숨> 중


이후 진태는 매형에게 돈을 꿔보지만 이전에도 돈을 빌려간 이력이 있는 그이기에 부탁은 거절당한다. 심지어 매형에 돈을 꾸는 모습을 누나에게 들켜 한소리를 듣기도 한다. 어머니의 장례가 마저 끝나지도 않은 순간에도 중요한 주식을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진태의 모습은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이 쌓여 앞서 조의금 상자로 향했던 진태의 시선이 가져올 어떠한 불안한 징후를 영화는 예고한다.      


영화 <한, 숨> 중


진태의 누나가 부의금 상자를 열자 손을 댄 흔적이 발견된다. 누나는 진태에게 달려가 부의금에 손을 댔냐고 묻지만 진태는 자신은 모른다며 되려 윽박을 지른다. 실제로 영화는 진태가 부의금 상자에 손을 대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진태와 누나는 사라진 부의금 때문에 서로의 머리를 잡으며 다툼을 벌이고 결국 부의금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영화 <한, 숨> 중

  

하지만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진태가 부의금에 손을 대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진태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맡겨둔 돈을 다시금 되찾기 때문이다. 진태는 자신이 부의금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숨긴 채 부의금을 원래 자신의 돈이었던 것처럼 속여 누나에게 건넨다. 갚을 필요는 없다며 너스레를 떤 진태는 누나와 함께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서 밥을 먹는다. 말도 없이 무언가에 굶주린 사람처럼 밥을 먹는 진태와 누나. 그리고 그 순간 영정 사진 속 어머니가 그들의 옆에 나타난다.      


영화 <한, 숨> 중

  

어머니는 모든 순간을 처음부터 봐왔다는 듯이 자식들을 말없이 응시한다. 진태의 상황과 행동이 안쓰러우면서도 용서한다는 표정의 어머니는 그렇게 처음에 나타난 것처럼 다시금 조용히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게 어머니가 사라진 장례식장에 한 직원이 나타난다. 자신이 CCTV를 살펴봤더니 진태가 부의금 상자를 정리하는 장면이 찍혔다는 것이다. 그렇게 진태의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진태의 누나가 다시 한번 진태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댕기면서 영화는 유쾌하게 끝이 난다.      


영화 <한, 숨> 중

  

영화 <한, 숨>은 진태의 한심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근심과 걱정을 사게 하지만 끝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따듯함을 가진 영화이다. 진태와 누나 그리고 어머니와의 생전 관계가 어떠했는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셋이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꽤나 불편한 식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가족이라는 관계는 다른 관계보다 더욱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로의 잘못을 알고도 매번 다시금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가족이니 말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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