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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Feb 21. 2023

삶이란 하나의 잘 짜여진 각본

영화 <도희의 세계> - 심지용 감독 


한 소녀가 소설책을 읽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한나연’. 그녀는 소설에서 ‘미운오리새끼’로 표현된다. 수려한 외모, 이유 모를 비범함으로 인해 같은 반 ‘안도희’에게 시샘을 받는다. 



망원경으로 나연을 관찰하는 도희.



소설의 텍스트대로 신들이 이어진다. 도희는 친분이 두터운 도서부장과 함께 나연을 미워하고 따돌린다. 교내독서그림 대회에 나가고자 책을 빌리러 온 나연을 도희는 비웃는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나연. 주인공은 항상 시련을 겪는 법이다. 도희는 정글짐에 앉아 캔디바를 먹다가 떨어뜨리고, 떨어진 캔디바에 스스로를 투영한다. 도희는 문득 삶이 별 볼 일 없는 단역과 같다고 느낀다.



질투심에 도희는 나연의 수상작을 몰래 뜯어 가지만, 귀신에 홀린 듯 그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있다. 텍스트에 따르면, 그림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 도희가 작품의 서사를 파괴한 셈이다. 이 모습을 보게 된 선생님이 도희를 호출한다.



선생님은 사건의 전모를 털어놓는다. 도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작가인 선생님이 창작한 소설책 안이고, 소설 외부의 독자가 책장을 넘김에 따라 이곳의 시간도 흘러간다는 것. 선생님은 도희에게 다음 소설의 주인공을 제안하며 뭘 하고 싶냐고 묻지만, 도희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도희는 나연 생각이 나고, 나연과 정글짐에서 만난다.



그러나 이 만남 역시 소설의 일부. 소설 안의 세계에 살아가는 존재들은 작품이 규정해놓은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주체’라는 믿음은 매우 만연해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애에서 정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주체로 구성한다는 명제를 개진한 바 있다. 기실 자유롭지 않은 존재들이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데 있어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자유의지 개념은 개인의 해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일견 매력적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 영화는 이 무서운 논리의 맹점을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포위된 세계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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