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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Sep 18. 2023

23. 제이든과 니콜의 방과 후

집에서의 소중한 일상들

호주에 온 초기에 제이든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엄마 오늘은 뭐 하고 놀까?"


그도 그럴 것이 제이든이 사람들과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었고 그저 제이든과 니콜. 

그렇게 딱 두 명뿐이었으니 말이다.


초반에는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하나씩 늘려가는 게 재미였다. 생활에 필수로 있어야 하는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들어오고 침대가 오고 그 이후에는 없어도는 되지만 사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구입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 TV가 생기고, 닌텐도를 구입했고. 아! 코스트코에서 소소한 쇼핑도 많이 했다. 


그중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것이 바로 Pet cusion (애완동물용 쿠션)이다. 처음에는 소파가 없어서 딱딱한 카펫 위에 앉아서 TV를 봤는데 뭔가 방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료품을 사러 코스트코에 갔는데 특대형 방석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이든과 나는 '바로 이거야~!'하고 집어 들었는데 라벨에 'pet cusion'이라는 문구와 레트리버가 쿠션 위에 떡허니 엎드려 있는 사진이 붙어있었다. 라벨을 보고 둘이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제이든, 이거 어때?"

"엄마, 이거 개쿠션인가 본데?"

"응 그렇긴 한데 우리 집에 가져다 놓으면 제이든 쓰기 딱 좋은 사이즈일 거 같은데?"

"에이.. 엄마.. 그래도 이건 개쿠션인데 좀 그렇지 않아?"

"뭐 어때. 새 거잖아."

"그럼 우리 이거 사갈까?"

"그래~ 그러자." 


말이 쿠션이지 어마무시한 크기여서 둘이 낑낑대며 쿠션을 사가지고 왔다. 아마 그 모습을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봤다면 '아니 원룸에 살면서 무슨 저렇게 큰 개를 키우나' 하고 의아해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날 이후 개쿠션은 제이든의 최애 장소가 되었다. TV를 볼 때, 게임할 때, 할 일 없이 뒹굴뒹굴할 때 제이든은 어김없이 그 쿠션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쿠션을 '개쿠션'이라고 불렀다. 하하하

개쿠션에 누워 게임하는모습(좌), 엄마의 마사지기 가지고 놀기(우) 개


그리고 집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춘 이후에는 집에서 참 다양한 놀이를 하고 놀았다.

그중에서 그래도 꽤나 오랫동안 제이든에게 사랑받았던 장난감은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터닝메카드였다. 제이든 학교에서는 수요일마다 반 친구들이 'show & tell'이라는 것을 했는데, 말 그대로 내가 보여주고 싶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것이다. 제이든은 첫 번째 'show & tell'을 하던 날 터닝메카드를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소개해줬다. 친구들이 너무 신기해했다며 우쭐해했던 제이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제대로 할 줄 아는 집안일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제대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할 줄 모른다기보다는 능숙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이든은 종종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특히 진공청소기는 자주 돌려줬다. 일 자로 세우면 본인 키랑 비슷한 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는 "엄마 다 했어. 휴우~ (이마에 땀 닦는 시늉)" 하곤 했다. 물론 제이든이 청소하는 것이 정말 깔끔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스스로 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딱 한 번, 제이든이 설거지를 해준 적이 있는데 (식기세척기가 있어서 설거지를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날도 갑자기 "엄마, 내가 설거지해줄게."라고 하더니 열심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 고무장갑이 너무 커서 제대로 접시를 잡기도 어려운데 그래도 그날은 끝까지 설거지를 마쳤다. 제이든이 설거지하는 동안 나는 개쿠션에 누워있었다. 비록 상체만 누울 수 있고 다리는 바닥에 있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 우리 집에서 침대 다음으로 편안한 장소였다. 그래도 다행히 제이든이 설거지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돌이켜보면, 거실 하나, 방 하나 있는 좁은 곳에 가구도 제대로 없이 지냈었지만 제이든과 나의 추억이 정말 많은 곳이다. 한국처럼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집에서도 양말 신고 옷을 껴입고 지내기도 했고 겨울에는 창문에 김이 서리다 못해 물이 되어 흘러서 카펫이 젖는 바람에 빌딩 매니저 쉐리든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호주에 있는 1년 동안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이곳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우리집 이모저모 (침실 거실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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