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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Sep 10. 2023

22. 호주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안 가 본 경찰서를 호주에서 다녀온 이야기

"꺄악~~~ 이게 뭐야!"

"엄마, 왜 그래?"

"제이든, 우리 텐트가 없어졌어!"

"뭐라고? 어디 봐봐~~"

"이것 봐, 누가 철망을 자르고 가져갔어."

"엄마 그럼 어떻게 해?"

"그러게...... 우선 학교부터 가자."


우리 아파트는 1층 로비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복도에 각 호실에서 사용하는 작은 창고가 하나씩 있다. 우리는 여기에 가전제품 박스나 제이든의 네 발 자전거 보조 바퀴 등 잡동사니를 넣어두었다. 철망으로 되어있어서 안쪽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잘 보이지만 아파트 안에 있는 거라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무거운 텐트를 굳이 8층까지 가지고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1층 창고에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아침에 제이든과 학교를 가는데 감쪽같이 텐트가 사라진 것이다. 자물쇠는 그대로 잠겨있었고 잘 살펴보니 누군가 창고의 철망을 자르고 텐트를 쏙 빼서 가져간 것이다.


복도에 있는 각 호실 창고(좌), 철망을 잘라낸 모습(중앙), 텐트가 놓여져있던 자리(우)

제이든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와 빌딩 매니저인 쉐리든에게 연락을 했다.


"쉐리든, 809호 니콜인데요. 저 텐트를 도둑맞았어요."

"니콜, 많이 놀랐겠네요. 지금 어디예요?"

"저 1층 창고 앞이에요."

"내가 지금 갈게요."

잠시 후 쉐리든이 내려왔다.

"이거 어떻게 해요?"

사실 그때까지 나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고, 창고가 훼손된 것을 어떻게 수리할지가 더 고민이라서 쉐리든에게 연락을 했었다. 쉐리든은 상태를 보더니 말했다.

"니콜, 이거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어요."

"네? 경찰이요? 이거 찾을 수 있을까요?"

"찾지 못하더라도 우선 신고를 해둬야 니콜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집주인에게 말할 수 있어요."

"아..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요. 경찰서 가볼게요."


쉐리든의 조언대로 사건현장(?)의 사진을 다각도로 촬영해서 휴대폰을 들고 인근 경찰서로 갔다. 죄지은 것도 아니고 도둑맞았다고 신고하러 간 건데도 왜 그렇게 떨리던지...... 가까운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치 우리나라 예전 전당포처럼 유리문이 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얼마동안 서성이고 있다 보니 제복을 입은 경찰 한 분이 나오셨다. 우리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제가 텐트를 도둑맞아서 신고하러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다친 사람은 없고요?"

(사람 먼저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네, 다행히 물건만 없어졌어요."

"그럼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줄래요? 우선 신고 접수해 놓고 조사하러 나갈게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접수번호를 받아왔다. 그 이후에 경찰들은 사건 현장 cctv도 확인하고 빌딩 매니저 쉐리든을 만나 간단하게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그 덕에 내가 창고를 복원해주지는 않아도 괜찮았다. 


얼마 후 나는 경찰서에서 온 이메일을 받았다. 나의 사건에 대한 사건리포트였다. 내가 유학생이라고 했더니 만약 도둑맞은 물건에 대한 청구를 할 수 있는 보험을 들었다면 이 리포트를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내가 산 텐트의 가격은 $500가 넘었지만 (다행히 영수증을 가지고 있어서 제출했다) 감가상각을 고려했는지 $125 정도의 가치라고 적혀있었다. 


다른 내용들은 사건에 대한 내용들이라 특별한 것은 없지만 맨 아래쪽에 사건 이후 상황에 대해 적혀 있는 'After a Crime'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건 이후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걸 하면 좋을지에 대한 간단한 팁이 적혀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말이 적혀있는지 1:1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요즘 한국에 와서 친구와 캠핑을 다니다 보니 이 사건이 생각났다. 아마 텐트를 도난당하지 않았다면 한국에 가져와서 한 두 번이라도 사용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사진으로나마 남아있어 반가운 오렌지색이 뽀인트인 텐트 사진을 올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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